채란 문학실

[수필] 한 밤의 짧은 명상

미송 2009. 10. 21. 00:27

 

 

 

한 밤의 짧은 명상 / 오정자

 

 

피아노의 청명한 소리와 기꺼이 어우러지는 구월. 가을비에 씻긴 저녁 길이 말끔하니 촉촉하다. 울타리 밖에 심겨진 꽃들이 유난히 아름답게 보여진다. 간혹, 길을 갖고 있지 않은 것들이 더 아름다운 법일까. 진리란 살아 움직이는 것이어서 쉴 곳이 없다, 고 말한 크리슈나무르티에게 끌렸던 한 때, 그 모든 권위에 대하여 두려움 없이 거부할 자신이 있는가 묻곤 했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것도 지나온 길. 지금 그리고 여기에 순간의 영원함으로 새근거리는 살아있음이 마냥 눈물겹다. 옆구리께로 스쳐 지나가는 시장기 같은 고독이 따스하다.

 

마흔 고개를 넘어서면서도 나는 여전히 천진하고 싶었다. 그래서 글쓰기를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홀로가 되는 일은 버리지 못하는 오랜 꿈이었다. 홀로란, 물들지 않고 자유로운 것, 전체에 속했으나 아웃사이더로 남는 것, 부서지지 않는 원형의 생명력일 것이니 있는 그대로의 나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사랑이라면 꿈틀대는 현재(present)의 내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무채색의 자연으로 수수히 흔들리는 것에 기쁨이 있다. 삶의 본질과 맞닿은 것에 환희가 있다. 존재는 순수의 힘을 빌어 강해진다.

 

‘스물셋의 사랑 마흔 아홉의 성공’이라는 책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조 안리라는 여자의 인생 후반기 이야기를 읽었다. 일과 사랑에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만한 그녀의 후반기 삶에는 겸허한 고백들이 박혀 있었다. 육체의 쇠약해짐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살아있음에 대한 그녀의 경이로운 시선이 겸허함을 낳은 것이리라. 나이 오십 줄에 들어서야 비로소 철이 든 아둔한 인간이라는, 그녀의 솔직한 표현이 참 좋다. 고비고비 새겨진 시련과 축복의 의미를 깨달으며 철이 들어가나 보다. 내 어린 상념들도 순환의 나뭇잎으로 나부낀다.

 

북인도 오지 라다크 지방에 사는 한 티베트 노인은 현대인의 불행의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당신들은 갖고 있는 좋은 옷과 가구와 재산이 너무 많기 때문에 거기에 시간과 기운을 빼앗겨 기도하고 명상하면서 차분히 자신을 되돌아 볼 시간이 없는 것이다. 당신들이 불행한 것은 가진 재산이 당신들에게 주는 것보다도 빼앗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고 했다. 가슴 찌르는 말이다. 소유보다는 버리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뜻이겠다. 한결 가벼운 채비로 남은 길을 갈 것이라는 나의 꿈들에 공감을 실어주는  말이다.

 

스스로 좀 더 약해진다면 무거운 짐들을 벗어버릴 수 있을까. 일과 사랑 그 밖의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정녕 나를 만날 수 있을까. 소유로부터 새처럼 자유로울 수 있는 삶. 내가 쌓은 재산이나 거짓된 명성들로 인하여 질식하지 않을 자유를 원하고 있다. 훼손하지 않는 전체 속에서 완성된 나로 살아 갈 아름다운 날(day)에게 침묵의 악수를 건네고 있다. 현재는 소중한 선물이기에 불면의 커피를 마시는 이 시간도 찬연한 행복이다. 

 

2007. 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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