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둔(居遁)은 나이 열네 살에 길주(吉州) 민전사(瞞田寺)에서 머리를 깎았다. 그후 숭악에 가서 계(戒)를 받고 여러 선방을 찾아 돌아다녔다. 하루는 취미선사에게 평소 궁금하게 여기던 문제를 물었다. "제가 선사의 문하에 들어온지도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제게 한 법(法)도 말씀하거나 보여주시지 않았으니, 그것이 무슨 뜻인지요?" "무엇을 의심하느냐?" 선사가 한 마디 하고 입을 다물자 거둔은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거둔은 멀리 덕산선사를 찾아가 물었다.
"멀리서 선사님의 한 구절 법문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렇듯 곁에 와서 보니 한 구절의 설법도 보고 들을 수가 없군요."
덕산이 대답했다.
"무엇을 의심하는가?"
거둔은 이 말에도 수긍치 못하고 길을 떠났다.
그는 이번에는 동산선사에게 가서 앞의 물음과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동산이 대답했다.
"어째서 나를 괴이하게 여기느냐?"
매번 이같은 대답을 듣게 되자 자기 자신에게 잘못이 있지는 않은가 여겨졌다. 거둔은 다시금 공부하는 무리 속에 섞여 스스로 묻고 배우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거둔은 다시금 동산선사를 찾아가 물었다.
"어느 것이 부처의 맥을 잇는 조사의 뜻입니까?"
동산이 대답했다.
"동산 골짜기의 물이 거꾸로 거슬러 흐르거든 그때 그대에게 말하리라."
이 말에 불법의 깊은 뜻을 번뜩 깨달은 거둔은 다시 제자의 예로서 동산선사를 8년동안 섬겼다. 후에 거둔은 사람들이 모이면 이렇게 말했다.
"불법을 배우려는 사람은 부처도 조사도 모두 뚫고 지나야 하느니라. 부처님도 조사들도 모두 원수처럼 여겨야 비로소 배울 자격이 있다고 한 옛 사람들의 말과 같이 부처와 조사의 벽을 뚫고 지나지 못하면 결국 부처와 조사에게 속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때 어떤 중이 물었다.
"조사와 부처가 어찌 사람을 속이겠습니까?"
"그대는 강과 호수가 사람들을 막으려는 마음이 있다고 보는가?"
중이 대답이 없자 거둔이 말했다.
"강과 호수는 사람들을 막으려는 마음이 없으나 사람들이 지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장애가 되었다. 그러하니 강과 호수가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지 않는가? 조사와 부처는 비록 사람들을 속이려는 마음이 없으나 사람이 뚫고 지나가지 못하므로 조사와 부처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만일 조사와 부처를 뚫고 지나간다면 이는 조사와 부처를 초월한 것으로 위로 향했던 옛사람들과 같게 되는 것이니라. 만일 뚫고 지나지 못하면 천 겁 만 겁을 지나도 얻을 시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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