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의 언어로 이해하는 유식
"모든 것은 마음이 조작한 것일 뿐이다."
우리는 종종 이 말에 공감하며 살아간다. 물론 이 말에 공감하는 것은 어떤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감상에 젖게 되는 잠시뿐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이 말의 일부를 인정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다시 되뇌며 자신을 위안하곤 한다.
이 경우, 우리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조작하는 '모든 것' 이란 대인 관계라든가 언어 구사라든가 감정 표현과 같은 무형의 사태를 가리키는 것이지, 내가 만지고 있거나 갖고 싶은 물건과 같은 유형의 실체까지 포함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처럼 마음은 우리가 겪는 무형의 사태만을 조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모든 것은 마음이 조작한 것일 뿐이라는 생각을 불교에서는 '일체유심조'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마음이 조작하는 '모든 것'이 무형의 사태뿐만 아니라 유형의 실체까지 포함한다면, 일체유심조는 우리의 상식을 초월하게 된다. 우리는 상식을 초월한 것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여 무시하거나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단지 자신이 납득할 수 없다는 데 있을 뿐이다.
상식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진실을 해명하고 납득시키기 위한 노력은 더욱 심오하고 난해한 이론이나 사상을 조성하기 일쑤이다. 불교에서 흔히 '유식학'으로 불리는 마음 철학도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 의도로 보면, 초상식의 세계를 상식의 세계로 인도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물론 세간의 범부들에게는 오히려 그 반대로 보일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모든 것은 공(空)'이라고 하는 관념은 상식을 초월한다. 이 초상식을 어느 정도 납득시킬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은 마음의 조작' 이라는 관념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모든 것'이 유형의 실체까지 포함하는 것이라면, 단지 '마음'이라는 일상어로는 그 관념을 충분히 납득시킬 수 없다. 이에 유식학은 '모든 것은 식(識)일 뿐'이라는 사실을 설명함으로써, '모든 것은 공'이라는 관념을 입증하고자 한다.
그러나 '공'을 해명하는 '식'이라는 말이 우리를 또 다른 초상식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더욱이 우리는 그 같은 초상식의 관념이나 세계가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럴 경우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책은 상식으로 접근해 가는 것이다.
일체유심조라는 관념은 어느 정도 우리의 상식에 들어맞는다. 그리고 때때로 우리는 그 관념을 적용하여 자신을 돌이켜보면서 자책하거나 자위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우리는 이 관념이 자신을 진정시키고 절제시키는 데 효과가 있음을 실감하곤 한다. 이 점에서 일체유심조는 자기 반성, 더 나아가 자기 정화를 도모하는 유익한 관념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유식은 일체유심조, 즉 유심의 효과를 더욱 극대화한다. 유식은 유심을 더욱 구체화하고 일반화한 인생관이자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다만 유식은 유심보다 더욱 상식을 초월하므로 우리의 실상과는 무관한 별종의 철학으로 간주되기 쉽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지식이 그렇듯이, 나는 유식도 상식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믿는다. 마음에 대한 상식은 유식이 된다. 여기서 관건이 되는 것은 언어이다. 소위 출세간의 수행자들과 세간의 범부들 사이에서는 같은 언어라도 이것을 이해라고 구사하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상식에서 유식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상식적인 언어로 유식학의 언어를 이해한다는 것이고, 유식학의 언어를 상식적인 언어로 전환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상식을 유식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은 유식을 상식으로 끌어내린다는 것과 같다. 적어도 나는 이 같은 관점에서 이 책을 썼다. 이 관점이 유식학의 심오함을 감손할지도 모르겠다.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반성적 삶을 유도하여 자기 정화를 도모하는 유식학의 의의까지 감손하지는 않는다고 확신한다.
나는 유식학의 전공자로 자처할 수 있을 만큼 유식학 전반에 깊은 조예를 갖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유식학의 일부 원전을 읽기 전부터 유식학은 내게 주요 관심사였으며, 불교적 신조의 기반이 되었다. 특히 일찍이 유식 관련 서적을 번역하면서, 유식학의 용어를 상식적 언어로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실감했다. 이에 유식학에서 번뇌로 취급하는 심소들을 나름대로 이해하여 단행본의 일부로 출판했고, 내친김에 유식학의 주요 개념들을 해설하여 불교 잡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이 일련의 과정은 지식의 정돈이나 습득에 그치지 않고, 내 자신을 반성하고 자세를 되새기는 수행의 일환이 되었다. 나는 독자들고 이 같은 실효를 체험할 수 있기를 기대하여 이 책을 펴낸다.
끝으로 묵은 원고를 발굴하여 단행본으로 엮어 낸 우천 이성운 선생께 감사를 표한다. 우천 선생의 권유로 그간 방치해 두었던 원고를 재검토하고 보완하여 이나마 모양새를 갖춘 책으로 개작할 수 있었다. 개작 과정에서는 특히 인용한 불전의 원문을 확인할 수 있는 미주를 작성하는 데 주력했으며, 본문에서 언급한 심소들을 소개하는 부록을 추가했다.
이 책에서 유식학의 주요 개념을 원론적으로 설명할 때는 요코야마 고이치의 '유식이란 무엇인가' 와 다케무라 마키오의 '유식의 탐구'를 주로 참고했다. 전자는 유상 유식의 해설서이고, 후자는 무상 유식의 해설서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서 그 양자를 차별하지 않고, 유식한 일반에서 통용될 만한 관념을 대변했다.
2005년 2월, 동악의 연구실에서
정승석(鄭昇碩)
'철학과 신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정승석 <상식에서 유식으로> 강의록 (0) | 2009.12.23 |
|---|---|
| 정승석 <상식에서 유식으로> 강의록 (0) | 2009.12.18 |
| 선 이야기- 부처도 조사도 뚫고 지나라 (0) | 2009.12.03 |
| 유식30송 (0) | 2009.12.02 |
| 선(禪) 1 (0) | 2009.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