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과 칼럼

정남영 <이시영의 시와 활력의 정치학>

미송 2009. 12. 9. 08:39

예술은 더이상 결론이 아니야. 반대로 예술은 하나의 전제

조건이야. 기쁨 없이, 시 없이 혁명은 더이상 있을 수 없겠

지. 되풀이하지만, 예술은 혁명을 앞질러 구현한 것이니까.

-안또니오 네그리

 

 

1. 머리말

 

좋은 시를 읽는다는 것은 사유의 촉발을 받는다는 것과 동일하다. 사유가 촉발되면 새로운 깨달음을 낳기도 하고 또 묻혀 있던 기존의 깨달음들에 새 빛을 던져주기도 한다. (滿月, 1976)에서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2007)까지 이시영의 시집 11권에 실린, 아마도 1000편에 육박할 시들을 읽으면서 나에게 촉발된 생각들은 실로 하나의 그럴듯한 시론 체뎨를 구성할 수 있을 만큼 다양했다. 나는 이것을 몇개의 주제 - 시와 그림, 시와 시간, 운문시와 산문시, 시와 정치, 시적 사유의 특성 등-로 나누어보았는데,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나에게 주어진 지면이 이것을 다 다루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하나의 주제에 집중해야 했는데, 비교적 최근에 김수영의 탈근대적 정치사상, 이라는 주제로 글을 한편 쓴 것을 단초로 하여 '시와 정치'를 선택했다.

 

김수영을 다룰 때에도 그랬지만, 내가 여기서 하려는 일은 시와 정치라는 별개의 두 사물을 연결시켜보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이시영의 시가 가진 힘 그 자체를 일종의 정치적 힘으로서 부각시키려는 것이다. 이 힘은 일반적으로 말하기는 '정치'가 가진 힘, 즉 권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히려 이 힘은 이 세상의 모든 권력에 맞서서 창조적인 삶을 지속시키는 노력의 바탕이 된다. 권력에 맞서기 때문에 정치적이지만 권력으로서 맞서는 것은 아니기에 전통적인 의미에서 정치적이지 않다. 더군다나 군사독재 시절에 맹위를 떨치던 주권적 국가권력과는 다른 유형의 권력이 우리의 삶에 점점 더 깊이 파고들어 우리의 영혼을 좀먹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무엇보다도 시 혹은 예술이 구현하는 종류의 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이 주제의 선택에 작용했다. 이 힘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는 글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드러날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특히 스피노자를 크게 원용하였다. 만일 이 글을 이시영의 시들 중 몇편을 골라서 세밀하게 분석하는 식으로 썼더라면 굳이 이럴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분석의 결과를 '시와 정치' 라는 주제로 말하기 위해서는 스피노자의 도움이 절실하게 요구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시는 읽는 이마다 특이하게 읽혀지기 때문에, 그 해석과 논의 하는 방법 또한 독자의 수만큼 많을 것이다. 나의 것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2. 정동과 활력

 

시의 정치성을 시의 외부에서 찾지 않으려면 우선 시의 고유한 힘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이 힘은 스피노자가 '정동(情動)'이라고 부른 것의 구현에서 찾아질 수 있다. 다음의 시가 정동을 설명하는데(동시에 이시영의 정동 구현능력을 일별하는데)적절할 것 같다.

 

대숲마을에 연기 오른다

참새떼 도르르 날아간다

하늘 매섭게 푸르다

 

-명주 목도리 두르고 학교 가는 날 <사이> 전문

 

시의 본문만으로는 그냥 매우 간결한 그림인 듯하다. 그러나 제목과 연관시키는 순간 갑자기 어떤 사건이 벌어진다. 이 그림이 명주 목도리를 두르고 학교에 가는 화자이 기분으로 순식간에 가득 차게 되는 것이다. 화자는 자신의 기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직접적인 진술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 기분이 독자에게 느껴지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시에 가득 차 있는 이 기분 혹은 기운, 이것이 정동이다. 

 

일반적으로 정서 혹은 감정(느낌)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주체-개인일수도 있고 집단일 수도 있다-에 귀속된다. 이런 경우 정서 혹은 감정은 그 주체의 상태이다. 그러나 스피노자가 말하는 정동은 이러한 상택ㅏ 아니라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의 변화이다. 이러한 상태변화를 몸의 활력의 증가와 감소의 측면에서 본 것이 바로 정동이다. 활력이 증가하는 경우에 발생하는 정동들은 '기쁨'에 속하고 활력이 감소하는 경우에 발생하는 정동들은 '슬픔'에 속한다. 위의 시의 정동은 당연히 기쁨의 정동에 속한다.

 

화자에 대한 진술이 하나도 없이 어떤 기운을 전달하는 위의 시가 입증하듯이, 정동이 정서나 감정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주체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이 주체에서 저 주체로 옮겨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주체가 정동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정동이 주체에 깃드는 것이다. 정동의 옮겨감 혹은 전염이 흥미롭게 드러난 사례-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다-를 하나 들어보자.

 

먼 남쪽에서 아카시아꽃을 따라왔다가 하루아침에 벌농사를 망친 양봉업자 최씨가 곰들의 배설물을 증거로 들고 나와 내 이놈들을 가만두지 않겠다며 TV 속에서 마구 핏대를 올리는데 글쎄 절도죄가 성립될지 모르겠다며 '뉴스24' 의 여자 앵커가 고른 이를 드러내며 웃고 시청자들이 웃고 무엇보다 발밑을 묵묵히 흘러가던 지리산 개울물이 큭큭 웃는다.

-유쾌한 뉴스 (은빛호각) 부분

 

"무엇보다 발밑을 묵묵히 흘러가던 지리산 개울물이 큭큭 웃는다"라는 대목에서, 그 이전에 불러일으켜진 웃음은 하나의 기쁨의 정동으로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지리산 개울물로" 옮겨가게 된다. 그래서 이 시에 주인공이라는 것이 있다면 전반부는 "벌통 40개를 작살"낸  지리산 반달곰들일 테고, 후반부는 바로 이 웃음의 정동 자체일 것이다. 

 

시인들은 단어들을 특이하게 배열하고 조합함으로써 단어들에 잠재적으로 들어 있는 정동들을 결합하여 하나의 특이한 총체적 혹은 복합적 정동이 발생하도록 한다

 

중략-

 

시를 쓰려면

온몸에 저를 실어

산 같은 무게로 바위 같은 몸짓으로 활활 타오르는

넋의 푸른 숨결이 있어야 할 터인데

어느 날 만년필 끝에서 쉽게 풀어지고 씌어지는 나의 시여

너에게는 피의 냄새가 없다

말의 탐욕만이 있을 뿐

관념의 허상만이 있을 뿐

살아있는 사람의 노여움 긴 긴 입맞춤이 없다

그 몰아치는 폭풍 속의 서늘한 눈빛이 없다

 

- 시를 쓰려면 <길은 멀다 친구여> 전문

 

여기서 이시영이 "온몸에 저를 실어" 한탄하는 것은 바로 정동의 구현이라는 차원의 결여가 아니고 무엇인가! "관념의 허상"이란 정동의 구현이 동반되지 않은 '생각'이 아니고 무엇인가! 

 

- 중략

 

이러한 성장의 연장선상에서 마침내 이시영은 슬픔의 정동이 아무리 지배적인 상황에서도 삶의 활력을 찾아내어 기쁨의 정동을 불러일으키는 시인으로서 자신을 당당하게 세우게 된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인식의 세번째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둘 다 인생을 마감하는 큰 행사의 하나인 죽음 앞에서 유머를 잃지 않는 모습이 위엄스럽고 또 유쾌해 보여 좋았다.

- 아주 특별한 죽음의 의식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부분

 

"육체가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영혼의 기쁨이 말할 수 없이 커지는 게 참으로 신비로운 일이지요." 

- 행복 (같은 책)

 

존 디 스콧은 코를 골며 자고 있다. 형집행 5시간 전이다.

-다섯 시간 전(같은 책) 부분

 

이제 이시영은 만물에서 활력을 포착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는다. 그가 말하는 "우주의 새벽 열림의 순간" ('사이' 후기)의 포착에 바쳐진 단형 서정시들도, 인물들을 노래한 서사적 성격의 시들도 그 핵심은 결국 활력의 포착이다. 

 

그의 눈은 활력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눈이 된다. 아주 조그만 것에도 존재하는 이 활력이 이시영에게는 신의 존재를 나타낸다.

 

잎새들이 바람에 온몸이 뒤집힐 듯 흔들리는 건

신의 뜨거운 숨결이 거리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일까

 

-예감 '무늬' 

 

스피노자에게도 이시영에게도 신이란 사물의 활력 외부에 있는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사물에 내재한다. 따라서 모든 사물을 활력의 담지자라는 점에서 신의 부분적 양태, 즉 신의 일부이다. 그리고 신의 일부로서 모든 사물들은 서로 통한다. 몸들(사물들)의 기쁜 섞임이 갖는 궁극적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인간의 몸과 자연 사물의 기쁜 섞임을 노래한 시를 하나 예로 들어보자.

 

저 나무에 바람 인다

잎새여 나부껴라

너 진 뒤 거센 바람 고요 뒤에 그 얼마 뒤에

우리 아기 연초록빛 발가락이 물든다

 

-바람 '이슬 맺힌 노래'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