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자료실 261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1 정거장에서의 충고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 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로 굴러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그곳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 것이다 구름은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 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하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 들어선 안 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 비가..

문학 자료실 2020.08.31

「칼의 노래」를 읽고

「칼의 노래」를 읽고 -가장 공적인 전쟁 속, 가장 사적인 인간성의 기록 김훈의 에세이 「바다의 기별- 회상」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조금 긴 내용이지만, 김훈의 세계관과 글을 쓰는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이야기인 것 같아 그대로 인용하기로 한다. 내가 쓴 장편소설 「칼의 노래」첫 문장은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입니다. 이순신이 백의종군해서 남해안으로 내려왔더니 그 두 달 전에 원균의 함대가 칠천량에서 대패해서 조선 수군은 전멸하고 남해에서 조선 수군의 깨진 배와 송장이 떠돌아다니고 그 쓰레기로 덮인 바다에 봄이 오는 풍경을 묘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에서 버려진 섬이란 사람들이 다 도망가고 빈 섬이란 뜻으로, 거기 꽃이 피었다는 거예요. 나는 처음에 이것을 “..

문학 자료실 2017.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