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와 A' / 오정자
그 이름 잘 몰랐을 때는
다만 '몸짓'이라고 불렀다
플렌치장미를 보고
그 장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저기 장미가 정말 아름답게 피어 있어" 했을 때
자신이 자주 본 장미가 그랜디플로러 장미이지만 역시
그 장미의 이름을 잘 모르는 사람이
“그래 아름다운 장미야” 라고 했을 때처럼
각각의 머릿속 그림으로 장미 혹은,
김춘수의 꽃을 감탄하는 우리가
아무리 꽃이라 불러도
그 꽃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당신이
그 이름까지 설명해 줘도
결국 당신 밖의 존재인 그 꽃
그 꽃 이름이 플렌치 장미였을까
누군가의 눈짓이고 싶었을 김춘수도
꽃도 그랜디플로러 장미도
엇갈리는 빛이다
무엇보다 제 이름도 모르고 태어난 꽃
아무리 꽃이라 불러도
여전히 당신 밖의 향기인 그
꽃도 제 이름 불리는 데로
표상에 어룽진 그림자로 살지는 않는다
또한, 모든 이의 꽃이 내 꽃이 될 수 없다
하나의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
위험하거나 불가능하다
한 가지 물을 네 가지로 보듯(一水四見)
김춘수의 꽃 그 중 하나도
능동의 꽃이었다는 상상,
제가 少時 적에...
金春洙 시인의 '꽃'을 읽고
본격적으로 시에 대한 흥미?가 깊어졌는지라,
오늘 올려주신 시가 각별한 느낌으로 자리하네요.
A와 A'
즉, 의미와 無意味의 문제라 할까.
사실, 꽃의 이름은 꽃 그 자체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는지도 모르겠어요.
(薔薇가 그 언제 사람들더러 자기를 '장미'라
불러주기 원했던 적이 있었을까요... '플렌치 로즈'이던
'그랜디플로러 로즈' 이던, 꽃은 그냥 자기 자신일 뿐인 거죠)
하지만, 꽃은 불행하게도? 오직 사람에 의해서
그 <존재의 의미>를 획득할 수 있지요.
생각하면, 세상에 사람은 없이 꽃만 滿發했다면
그 꽃을 사랑하고 어루만져 줄 그 누가 있을런지.
하여, 그 어떤 능동적인 主體에 의해 수동적이나마
認識의 客體가 된다는 건 행복한 일이기도 합니다.
(꽃의 입장에서 보자면)
가령, 그 누가 날 사랑해 주고 있다면...
(그리고 그런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내가 행복하듯이 말이에요.
주방 / 오정자 |
주방.
쉽게 말하자면...
실제적 생활의 내음이 가장 강렬하게
배어있는 곳인데, 그런 공간을 시인의 내면의식이
자아내는 풍경에 접합接合시켜 진술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네요.
또한, 주방을 한편의 시로 형상화함에 있어서...
그것과 시인 자신이 어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점도
매우 이색적인 느낌이구요. (마치 시인이 제 3者가 되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듯이 --- 할배의 눈 속에 눈 하나가
나를 오랫동안 보고 있다 나도 본다)
다만 여기서, 주방에 오래 살고있는 할배의 의미는
다소 불명不明하지만 주방에 깃들어있는, 혹은 쌓여있는
오랜 시간의 흔적 정도로 이해해 봅니다.
어쨌던, 시에서처럼 자기를 벗어나서 자신을 客觀으로 관찰하는 것도
삶의 보다 명징한 문양紋樣을 파악하는 데 의미가 있는 일이라
제 나름 생각해 보네요.
(어디까지나, 제 주관적. 즉흥적 느낌이라서 미흡한 마음)
그점은 시인의 너그러운 이해를 구하구요.
문득 / 오정자 얼비치는 생각이었다 탁 숨이 멎는 순간의 마나야식이거나 양 극단이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그 누구의 무엇도 될 수 없는 중도이거나 스물네 시간 그대 진실로 무엇으로 있는가, 묻는 그런 말은 하지 않겠어 삶은 끝없는 균형맞추기일테니까 어제 말한 도마뱀을 그려보기로 했다 제 꼬리를 끊고서 달아난 도마뱀 그 도마뱀 꼬리가 혼자 꿈틀거리고 있다 꼬리로 시곗바늘을 만들었어 똑딱똑딱 바늘이 움직일 때마다 싹둑싹둑 잘려 나가는 꼬리를 상상했지 왠지 도마뱀도 꼬리도 시곗바늘도 시간도 저 혼자 반짝이는 생명일 수가 없어서 언젠가 내 몸 일으켜 세우던 당신을 한 번 더 기념하기로 했지 봄이 들어앉을 터 위에서 도닥이는 꽃밭, 꽃밭이 용서의 의미로 다가왔을 때 당신이 서 있는 그 곳과 지금 내가 숨 쉬는 이 거리만큼 존재하는 사랑의 체온도 다시 그 만큼씩 잘려 나가겠다는 그런 생각이 든 거야 |
저두, 도마뱀의 잘려나간 꼬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저 절단되어 꿈틀대는, 꼬리는
어떤 의식意識일까?
도마뱀의 남은 몸뚱이가 지닌 의식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구요.
그리고 보면, 우리 몸을 구성하는
수 많은 세포들의 개별적 독립의식은
'나'라고 생각되어지는 '총체적 의식'과는
또 다른 별개인 것두 같습니다.
올리신 시가 내용이 깊어서...
뭐라, 단적으로 말씀은 못드리겠구.
다만, 시에서 '마나야식'을 말씀하셔서
그것에 관해 조금 생각해 봅니다.
불가佛家의 유식론唯識論에서 말하는...
여섯 개의 식識,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 이외에도
제7식이란 게 있는데 의식意識으로 이해되는 제6식과의 혼돈을 피하기 위해서
말라식, 혹은 마나야식으로 음역하여 사용되죠.
그 다음으로 자리하는, 제8식은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고 하는데...
이는 마음과 육체의 근본이고 뿌리가 되는 마음으로 모든 업業을 보관하고 있어
일명, 장식藏識이라고도 하고 있구요.
시인님이 시에서 말한 '마나야식'은 ‘항심사량恒審思量'으로 규정됨에
그 특징이 있는데, 이것은 항(恒)사량과 심(審)사량으로 구별되구요.
항(恒)사량이란 ‘사량(생각)’의 항상성(恒常性 = 계속성)을 의미하죠.
이점은 전5식은 사량하지 않지만, 제6식과 제7식은 사량하는 기능을 갖고 있음을 말하는데
제6식의 경우는 언어(말의 의미)로서 사량하지만, 항상 사량하는 것은 아니구요.
하지만, 제7식은 단절 없이 계속적으로 사량한다는 점에서 '항사량'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자아의 정체성正體性>을 확립하는 근거가 된다고 보는 거죠.
이것의 구체적인 내용(心所)를 살펴보면 감정, 생각, 갈망 등으로
이것을 ‘나’라고 동일시하여 집착하고 ‘나의 것’으로 분별하고 또 그것의
상실을 염려하죠.
(대개의 경우, 우리들은 그렇게 미망迷妄의 삶을 살아가죠)
한편, 심(審)사량이란 변화 자체를 자아로 사량(생각)하는 작용인데...
변화하는 강물을 변하지 않는 존재로 사량함을 말하죠.
이는 마치 ‘모든 사물은 변화하지만, 변화하는 그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데요. 변화 속에 변화하지 않는 그것을 자신의 존재로서
판단하고, 스스로 그것을 '자아'라고 집착하는 거죠.
저 개인적으론...
사실 이 점들은 인식의 오류誤謬를 범하는 것으로 여겨지네요.
왜냐하면, ‘사물이 변한다’고 하는 판단이 자아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즉, 변화를 판단하고 사량하는 '존재자存在者'가 있다고 가설해 놓고...
제7식은 그것을 '자아'라고 잘못된 인식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이런 점에서 '항심사량'은 '인지왜곡認知歪曲'의 한 형태인 것도
같습니다.(웃음)
착각 / 오정자
씹는 맛에 초저녁
두둑한 갈매기살을 굽다 보면
새도 아닌 것이 어떻게 갈매기지
메뉴표를 찬찬 보게 되는데요 그 고깃집
항정살 주먹살 아구볼살 이름표가 수두룩하지요
그들이 뿔뿔이 도망칠 것도 같은데요
그건 입 속, 세포들의 개별적 독립의식이 무섭다는 뜻입니다
소주도 한 잔 곁들이지 않은 갈매기살 질질 씹다보면
그해 바닷가 갈매기 소리 들리는데요
착각은 더욱 화려해
지나던 사람들도 묻고 있네요
저 갈매기 진짜야
가짜야
저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는 그래요.
남의 살(그 세포가 식물의 것이던, 동물의 것이던)을 먹고
생존하는 방식은 지극히 열등하다는.
(남의 생명을 빼았아 살아가므로)
그런 면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진화된 건...
태양 빛의 광합성光合成 방식을 택하고 있는 식물 같은데요.
또한, 그들에겐 일체의 착각도 없을 것 같습니다.
일색(一色) / 오정자
겨울이 가는 건가 봄이 오는 건가
그대 위해 남몰래 현중곡을 부르나니
허공 속 저 달빛 꺾어올 수 있으리오
그 무엇이 해를 가릴 수 있으리오
눈썹 한번 찡긋하니
해를 가리네
시인님은 불가쪽으로도 조예가 깊으신 듯.
시에서 현중곡玄中曲을 말씀하시니.
현중곡은 同安常察禪師동안상찰선사
십현담十玄談 중에 제 열번째 항목에
자리하지요.
그 중에,
<공리섬광찰득마 空裏蟾光撮得麽
허공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잡았네>의 구절에서...
그 一色을 보기 위해,
저 역시 눈썹 한 번 찡긋해 봅니다.(웃음)
남포동 거리의 봄 / 오정자 |
저는 부산이 출생지인데요.
제가 간직하고 있는 옛 사진 중에...
엄마 등에 업혀서 이 남포동 거리를
지나는 빛바랜 흑백사진이 한 장 있답니다.
(당시엔 길거리에서 사진사들이 그렇게 스냅Snap사진을
찍어서 반강제적으로 사게 했다는 --- 웃음)
물론, 사진 속의 그 장면이 제 기억엔 전혀
없을 정도로 전 어렸구.
시를 대하니, 문득 부산에 가고 싶어지네요.
지난 幼年의 기억들이 여기 저기 숨어있을,
그곳에...
너의 밤 기도 / 오정자
충혈된 눈에는
맑은 날에도 물기가 고이므로
그 눈빛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흔들리는 등불을 잡고
너울너울 옷자락 펼쳐 앉는 그대
아름다운 신전의 이름을 아직 모릅니다
다만 광할한 우주
해와 달과 별 그리고 꽃들의 노래들을
눈물로 씻어
맑고 깊은 물길로 흘려보내는
마음이란 어디서 시작되는지
내막을 모르는 그들은 신비합니다
내막을 아는 우리는 행복합니다
그대의 밤 기도 듣는
지금은 미명(未明)
그대의 눈물을 통하여,
말해지는 기도의 형상화形象化는
광할한 우주적 국면의 감각세계 - 다시 말하면,
현실에서 유리流離된 해와 달 그리고 꽃들의 노래를 추구하며...
행복을 간구懇求하는 마음에 도달하는 신비의 빛을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 내막을 모르는 자, 아는 자 모두 함께...
미래의 사랑과 영혼의 자유를 위한 기도의 의지 앞에서는
신비하고 행복한 존재일 것입니다.
설령, 그들은 그들의 운명에 무심할지 몰라두...
그 기도 소리에 귀 기울이는 어떤 한 마음 안에서는
그들은 그들이 만들어낼 神話의 명백한
주인공일테니까요.
시를 감상하니...
결국, <시란 건 未明에 올리는 기도>를
닮아있단 생각이에요.
미스터, 리 / 오정자 |
요즘 올라오는, 시인님의 시편들은
우선 스토리 텔링 Story Telling 的으로
시선을 끄네요.
오늘의 시에서두,
시의 등장인물들이 그들이 함께 지고온
세월 끝에서 그릇에 담긴 한 통 속의 오래 묵은
장 맛 같은 情을 나누는 장면이
눈길을 끕니다.
뭐, 불타는 격정의 사랑은 피차간에 꿈처럼
사라졌다는 心懷를 포괄적으로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반면에, 더 굳건하고 비길 데 없는 情 (미운 정 포함)이
그 격정의 사랑대신에 놓여진 듯 합니다.
아, 그래두... 그는 행복한 사람이어요.
始原 모를 장 맛이라며 투덜대면서도,
"나의 미스터 리'하며 불러주는 사람이 곁에 있으니.
어쨌던 그러다가... 내 살이 네 살인지,
네 살이 내 살인지 모를 곰삭은 사랑으로
오랜 친구처럼 서로 껴안겠지만.
나는 'Mr. Ahn'하며 불러주는 사람도 없구.
암튼,
숨막히게 목이 긴 꽃 한 송이만 쓸쓸한 식탁 위에
꽂아놓고... 세월을 뒷걸음치던 세상 한 끝이 행복에서
떨어져 나간 모습으로 혼자 밥을 먹는 나는,
그저 부럽단 말밖에 할 말도 없고.
잘, 감상하고 갑니다.
근데, 그 된장국 제목이 뭐여요?
된장, 막장 막들어간 수영장에서...
헤엄치는 동해바다 다리 열개 달린 물고기가 있는,
(궁금하다는)
바타이유 에로티즘 / 오정자
그해 봄에도 머리를 감았던가
예의에서 어긋나지 않으려고
너에게만 열던 에로티즘의 시간
흰 포말을 입에 문 파도처럼 거듭 새로워지는
물결에 젖어들 때 잃어버리게 된 소유권
그러나 아직도 은유가 되지 못한 언어들은 스위치를 내리지 않는다
감수분열 4분체 가운데 한 개의 염색체
창 없는 모나드(monad)들은
좁힐 수 없는 거리에서 죽어간다
알싸한 밤 비가 되기도 하고
안개를 데피기도 하는 이유는 나 몰라
곤핍한 영혼의 만남은 기적이겠다
음란은 동요 닫힌 문 밖에서의 몸은
연속성을 향해 열린다 냉혹한 진실은
표면의 스침 뿐이라 해도
영혼의 비타민 하나 건네고 싶다
조르주 바타이유 (Georges Bataille, 1897~1962).
극단적 에로티즘을 그린 작가이죠.
사치. 전쟁. 희생제의犧牲祭儀 . 섹스 등 ‘저주의 영역’에
그 나름 진지한 사유思惟의 빛을 비춘 사람.
일생 동안, 기성旣成의 가치와 고정관념을 전복顚覆하는
논쟁의 한 복판에서 치열하게 쌍 코피 터지며...
싸웠던 사람.
하여, 그는 늘 시대의 스캔들의 한 가운데 있었고...
또한 그 스캔들은 시대의 뜨거운 논쟁을 낳았죠.
그에 대한 광범위한 비난이 찬사로 바뀐 건
1968년의 이른바, 학생혁명을 계기로 해서였는데.
시인님도 잘 아시는... <푸코>,<데리다>,<라캉> 等
68세대의 주요 사상가들이 理性의 절대적 힘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의 광기에 건 온갖 저주의 주문呪文들을
풀어내면서 그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필독의 대상이
되었구요.
그리고 오늘날까지 ‘아웃사이더 지식인' <바타이유>의
저술을 영원한 고전古典의 반열에 올렸다고 할까.
그의 책(저주의 몫)을 언제 한 번 정독한다 하면서도...
늘 시간이 없단 핑계로. (웃음)
" 곤핍한 영혼의 만남은 기적이겠다 "
詩에서 말해지는 것처럼, 냉혹한 진실은
표면의 스침 뿐이라 해도.
시를 읽고... 비타민 하나 잘, 건네받고 갑니다.
실상, 늘 모나드 Monad의 영양실조로 빌빌했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