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문장

[김선우] 잔인한 4월, 꿈꾸는 4월

미송 2010. 4. 14. 23:35

[김선우]잔인한 4월, 꿈꾸는 4월

 
 
우울한 봄. 숨이 막힌다. 끊이지 않는 사건사고 속에 슬픔과 탄식들이 떠돈다. 반 토막 난 선체에 갇혀 바닷속에서 죽어간 생떼 같은 젊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진다. 절망의 아수라장… 숨이 막혔을 것이다… 조금씩 희박해져 가는 공기… 태평양 한가운데도 아니고 자국 영해의 연안 바다에서 함선이 침몰했는데 구조받지 못하고 수장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으리라. 두려웠을 것이다… 몇 명의 생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었을 구조의 시간들은 왜, 어디서, 실종된 걸까. 누가 무엇을 알고 있으며 누가 무엇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있는가. 의혹만 키우는 당국의 정보 통제와 기이한 억압의 느낌. 뉴스를 보다가 자꾸만 목이 멘다.

 

뭔가, 이런 시절은. 한반도 생명의 젖줄인 강들이 국민의 합의 없이 ‘속도전’으로 파헤쳐지며 똑같은 공포에 떨고 있을 것이다. 굴지의 재벌그룹 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을 얻어도 산재 처리되지 못한 채 죽어간, 꽃 같은 23세 젊음도 같은 심정이었으리라.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았을 뿐 버젓이 저질러지는 이 모든 백주의 살해 현장들, 후일 우리는 이 시절을 뭐라고 말하게 될까. 2000년대의 탈을 쓴 1900년대였다고 기억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최근 TV에서 청와대 대변인의 논평을 보다가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그것은 ‘위대하신~’으로 시작해 ‘지시하시었습니다’로 끝나는 북한 방송에서 흔히 보이는 과도한 충정의 느낌이 남한 방송에서도 재현되고 있는 듯해 끼쳐온 소름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발화의 뉘앙스가 ‘모시는 분’의 성향을 간파해 밑에서부터 알아서 기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아, 뭔가 이것은? 군부독재 시절도 아닌 2010년에, 국민을 향한 정부의 말이 도덕적 진정성을 전혀 확보하지 못하는 이 괴상한 사태의 연출은 누가 맡은 것인가.

전국의 모든 공무원들은 무조건 공직자통합메일(korea.kr)에 의무 가입해야 하고 직장 내 각종 정보 공유 및 e메일 전송은 이 메일을 통해 ‘보안관제센터’의 관리를 받게 되며(대명천지 인터넷 시대에!), ‘불법시위’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확인서에 서명을 해야만 지원금을 주겠다는 ‘반예술적’ 행정을 펴는 후안무치한 공공예술기관이 있고, 인터넷 패러디 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없는 ‘반문화적’ 문화체육관광부가 네티즌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하는 지경인 기이한 우리의 2010년. 앞선 세대의 고난을 먹고 자란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표현과 비판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민주주의란 없다.

잔인한 4월, 존중되지 못한 국민의 마음이 거대한 흐느낌으로 공기 중에 떠다니고, 딴소리나 해대며 속을 뒤집어놓는 언론들에 대한 분노가 우리의 심폐기관으로 울증을 유발하며 드나들지만, 하지만 너무 오래 울지는 말자.

‘황무지’를 가로질러 우리는 그래도 삶을 꿈꾸어야 한다. ‘잔인한 4월’로부터 걸어나가야 한다. 저마다 자신에게 닥친 문제의식을 일상 속에서 적극적으로 ‘표현’하자. 소리내어 맘껏 ‘비판’하자. 저마다 한 가지씩 행동강령을 가지자. 내가 당한 의아한 사건들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자.

일신이 안락하다고 고통받는 시대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 한심한 시대 앞에 능욕당하기를 기다리는 다음 차례의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잔인한 4월이여, 우리는 숨구멍을 찾아낼 것이다. 우리는 기어코 꿈꿀 것이다. 꿈꾸지 않는 것들은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경향신문> 4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