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문장

[유채림] 이상(李箱), 야쿠자 두목, 철거용역

미송 2010. 4. 17. 15:10

[유채림]이상(李箱), 야쿠자 두목, 철거용역 

 

강제철거에 맞서 농성하는 동안 종종 「날개」의 작가 이상을 떠올렸다. 그의 문학과는 상관없는 어떤 일화를 떠올렸기에 약간 떨떠름하긴 하다. 그는 1910년에 태어나 스물일곱 해인 1937년 4월에 생을 마감했다. 요즘처럼 명이 긴 시대에 스물일곱이면 에누리 없는 꽃다운 나이다. 안타까운 요절이라고 누군들 혀를 차지 않겠는가.

 

1936년 말이었다. 그때 이상은 동경에 있었다. 그는 폐결핵 말기 환자여서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듯이 앙상했다. 그런데도 신주쿠 거리에 있는 술집에서 술을 홀짝거리는 일이 잦았다. 어두침침한 홀에서 백구두에 때 절은 흰 양복을 입고 홀로 앉아 있는 모습이 어땠을까. 한껏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입속으로 잔을 털어 넣는 그의 모습이 어땠을까. 지나치게 시건방져보였던 모양이다. 신주쿠 거리를 휘젓는 야쿠자 두목이 조무래기들을 끌고 술집을 찾았을 때, 이상의 모습은 정히 그랬던 모양이다.

 

그날 야쿠자 두목은 이상의 발을 지그시 밟고 홀 안쪽으로 가서 앉았다. 발을 밟힌 이상은 아픔을 참는 대신 조용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내 발 밟은 자 이리와!” 뒤따르던 조무래기 중 하나가 이상을 걷어찰 기세로 다가섰지만 이상은 개의치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 발 밟은 자 이리와!”

예사롭지 않은 놈이라고 여겼던지 조무래기를 뒤로 물리고 두목이 직접 나섰다. 그는 자리에 앉아 있는 이상을 맹렬한 눈길로 쏘아보았다.

“당신이 내 발을 밟았는가?”

이상의 물음에 야쿠자 두목은 그렇다고 말했다.

“사과하시게!”

두목은 어이없어 하는 눈길로, 그러나 야쿠자 두목한테 이만한 용기나마 보여주는 자라면 충분히 존중할 만하다고 여겼던지, 조용한 목소리로 사과하기를 거부했다.

이상은 탁자를 잡고 힘들게 일어났다. 몸이 휘청거렸다. 그러나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나한테 이길 수 있소?”

이쯤 되면 더는 기다릴 수 없는 법이다. 70여년이 흐른, 모든 면에서 급해지고 난폭해진 오늘의 시대라면 충분히 그렇다. 그러나 야쿠자 두목은 이상을 결코 주먹으로 홀대할 상대가 아니라고 본 모양이었다. 그는 이길 수 있다는 짤막한 대답만 했다.

 

이상은, 따라 나오시게, 하면서 야쿠자 두목을 밖으로 끌었다. 공터를 찾았고, 조무래기들을 공터 입구로 물렸다. 이상과 야쿠자 두목은 마치 서부영화의 결투장면처럼 옷자락을 휘날리며 공터 가운데 마주섰다. 서부영화와 다르다면 마주선 두 사람의 거리가 상대방 코털이 보일 만큼 가까웠다는 것이다. 이상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묻겠다며 야쿠자 두목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 나한테 이길 수 있소?” 야쿠자 두목은 다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과 야쿠자 두목 사이의 일화는 여기서 끝난다. 물론 뒷얘기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시답잖다. “나한테 분명 이길 수 있다고 했으니, 싸움은 이미 끝났소. 사요나라!”

이상이 그렇게 말하자 야쿠자 두목은 그 길로 돌아섰다고 한다. 뒤늦게 화가 치밀어 오른 야쿠자 두목이 본때를 보여줬다는 얘기 같은 건 없다. 이상과 야쿠자 두목이 배짱이 맞아 한 잔 더했다는 얘기 같은 것도 없다.

 

모든 인생은 격이 있다. 아니다. 전혀 격이 없는 인생도 있다. 격이 없는 인생을 두고 우리사회는 시러베자식이니 무뢰배니 깡패니 날건달이니 야쿠자니 하면서 극력 천시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보다 더 천시할 만한 무격의 군상들이 버젓이 활보하고 있는 게 오늘의 한국사회이다. 해괴하고 망측한 일이지만 사실이다. 그들, 무격의 군상들은 가는 곳마다 승승장구한다. 헤비급은 헤비급끼리 붙는 것이고, 밴텀급은 밴텀급끼리 붙는 게 격이지만 그들에겐 급이라는 것도, 격이라는 것도 아예 없다. 20대 새파란 나이에 70대 노인네와 붙는다. 유도와 권투, 태권도로 단련된 딴딴한 몸으로 50대 아주머니와 붙거나 이십대 처녀와 붙는다. 그도 모자라 열대여섯 명이 똘똘 뭉쳐 한두 명과 붙기도 한다. 심지어 무방비 상태로 있는 상대방에게 야구방망이나 쇠절구, 부엌칼까지 들고 붙는다. 그러니 오직 승리뿐이다. 늘 승리해서 좋겠수!

 

그 같은 무격의 군상들을 우리사회는 ‘철거용역’이라고 부른다. 검은 티셔츠에 검은 모자까지 눌러쓰고 철거현장마다 가차 없이 짓밟아대는 그들의 승리담은 놀랍기만 하다. 일산 덕이지구 철거현장에선 이런 일이 있었다.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20대 여대생 딸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지구 돌리기를 하더니 급기야 벽돌더미 위에 패대기를 쳐댔다. 힘이 넘친 그들은 그도 모자라 통곡하는 어머니의 옆구리를 걷어찬 뒤, 나머지 두 딸애까지 집어던졌다. 그때의 충격으로 뇌출혈을 일으킨 어머니는 요즘도 목발을 짚고 다니며 철거농성 중이다.

 

그런가 하면 용산4구역 남일당 앞에선 이런 일도 있었다. 열대여섯 명이 일흔두 살의 노인네에게 달려들어 통쾌하게(?) 따귀를 쳐서 쓰러뜨리고 절구질을 하듯 발로 짓밟아댔다. 이를 보고 달려온 아들까지 흠씬 두들겨 팬 뒤, 좆두 아닌 것들이 까라면 까지 버티고 지랄이야, 하고 거품을 물었다. 치욕과 분노, 우리사회의 무법에 몸을 떨던 부자는 끝내 남일당 옥상의 망루에 올랐다. 철거용역들은 그곳 3층까지 따라 올라가 폐타이어에 불을 지르고 물대포를 쏘아대면서 죽음을 재촉하는 포악을 떨었다.

 

뿐이랴! 마포구 동교동 167번지에선 이런 일도 있었다. 라틴댄스학원이 있는 건물로 몰려가, 언제 나갈 거냐고 소리를 지르다가 학원장을 들어 올려놓고, “이걸 내려? 달아?” 하면서 야만을 즐겼다. 그들은 무려 3개월이나 학원장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더는 견딜 수 없던 라틴댄스학원이 발가벗고 나가자, 무격의 군상들은 곧장 두리반으로 달려왔다. “이사비용 3백 줄 때 나가, 나가라구!” 거부할 수밖에 없는 현실, 맨몸으로 두리반에서 쫓겨나면 빚만 짊어진 채 거리를 떠돌아야 하는 현실, 두리반 주인은 뼛속까지 시려오는 아픔을 참고 버티는 길을 택했다. 그러나 무격의 군상들이 누군가. 그들은 2009년 12월 24일 보쌈접시 하나 남김없이 두리반을 들어내었다. 가게 앞에 철판까지 둘러쳐대는 그들을 향해, 너희가 사람이냐고 여주인이 울부짖자 그들은 툭 한마디를 던졌다. “이년아, 밤길이나 조심해!” 원 세상에, 똥 뀐 놈이 성을 내도 유만부동이지!

 

먹고 사는 길은 여러 가지지만, 무격의 군상들은 하필 악랄하게 먹고 사는 길로 갔다. 건설투기꾼이 던져주는 돈에 홀려 주먹 파는 것으로 모자라 영혼까지 팔았으니 그들의 인생은 가감 없이 무격이다. 하면 이상의 호기를 너그럽게 넘긴 야쿠자 두목 같은 격이나마 찾고 싶을까. 미안하지만 무격의 군상들에게 야쿠자 두목의 격은 하늘이다. 인생의 ‘오후 4시’에 땅을 치며 후회할 성정조차도 없는 자들! 그렇다면 관 뚜껑에 흙 덮는 날 다음 얘기라도 갖고 들어가길!

 

80년대 후반, 처가 덕에 상계동 아파트 꼭대기 층을 분양받은 소설가 K가 있었다. 집 없이 떠돌던 그로선 꿈같은 아파트였다. K는 만족했다. 그러나 밤이 오고, 또 다른 밤이 오고, 또 다른 밤이 왔을 때 그는 통곡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곳에서 가슴을 치며 쫓겨났을 철거민들의 울음이 밤마다 아파트 꼭대기 층까지 들려오는 듯해서였다. K는 끝내 상계동 아파트를 팔아치우고 충북 청주의 한 농가로 이사하고 말았다. 돈 되는 아파트라고 너도나도 눈독들이던 시절, K는 철거민들의 울부짖음에 눈물겨워 돈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었다. 그는 작가의 격을 세웠다.

 

유채림 소설가, ‘두리반’ 주인의 남편으로 강제철거에 맞서 농성 중

지은 책으로 『금강산 최후의 환쟁이』, 『서쪽은 어둡다』, 『그대 어디 있든지』 외 다수

[출처] 한국작가회의 저항의 글쓰기실천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