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시] 입, 그 여자

미송 2009. 3. 23. 09:39

 

입, 그 여자

 

트리피스 누런 잎 한 장 떼어내며

죽음을 확인한다

죽음을 맞게 한 건 내가 아닌데,

물렁한 줄기를 눌러본다

두 달 전 선물로 들어올 때부터

한 쪽 끝이 많이 찢어졌었다고

그이는 죽음의 이유를 말했고

떼어낸 이파리에는 더 이상 시선을 주지 않았다

네가 죽었다고 말하면 죽은 게지,

한 입 통 속으로 이파리가 사라진다

잎 떼어낸 자리에 홀연 콩나물 대가리들 올라온다

잎 다른 초록 광채들 여백이 숭숭하고

갈증이 활달하다

 

2007년 초겨울 그녀 도도하고 말라깽이 같은 어깨를 치세우고 우리 카페에 들어설 때부터 알아봤어 목소리 건조하고- 4년 전 자기를 배반했던 남자와 우연히 만나 대판 싸우고 온 사람처럼- 매섭고 차가운 눈빛 남은 건 뾰족한 입 하나 지들 호랑이 굴로 들어간 격이라고 속닥댔지만 가만 보니 가는 곳 마다 뾰족한 고 입으로 여우나 호랑이 무찌르고도 남았을 게 뻔, 살쾡이처럼 잔잔한 땅 후벼댔을 게 뻔, 병든 입 입이 무서워 그, 입......

 

허슬허슬한 여지 끝내 허용치 못하던

애물단지 잎 하날 잘라냈다

겨울 몸싸움을 그쳤다

 

2009. 3. 23 오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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