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칼럼] 촛불시위

미송 2009. 3. 29. 00:15

촛불시위

 

서울은 지금 촛불시위축제에서 독재의 저항으로 몰입하고 있는 중인가. 청계천에서 여의도로 어젯밤에는 시청 앞 광장으로 꺼지지 않는 촛불 행진은 이어지고 있다. 몇 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밤잠을 못 자고 거리로 뛰쳐나와 아우성이다. 자고로 중학생들이 들고 일어났던 항쟁치고 역사적 불운을 점치지 않은 경우가 없다.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린 4.19 혁명이 그랬다. 이것은 불길한 조짐의 예이지 단순한 저항이 아니다. 순순한 의사표명이 왜곡의 틀에 짓이겨질 때 저항하지 않는 자는 무엇이란 말인가. 노예인가 죽은 자인가. 생존권과 인간 존엄성이 걸린 개인의 위기 앞에서 과연 중학생들이 이데올로기 문제로 저리 난리법석을 떤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좌익이란 말인가, 그것은 오류다. 억지이며 얼토당토않은 고집이다. 아이들은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말하는 것뿐이고, 천민자본주의에 물든 일부 지배세력은 이중논리를 펼치는 것이다.

 

지긋지긋한 거짓말은 오늘도 민중을 우롱하고 있다. 미친 소를 수입하지 않겠다는 근원적인 해답이 아니라 자기를 봐서 먹어달라니 눈 가리고 아옹 하는 꼴이다. 눈속임에 능한 자들은 원천적으로 양심이 없는 자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민중들의 입은 입이 아니고 아가리인가. 수많은 촛불 앞에서 떳떳이 사죄하고 비굴한 약정들을 수정해 보겠다고 선언하는 게 국가 원수다운 발언이지, 얼렁뚱땅 넘어가면 분명 거짓이다. 설거지하던 젊은 여자들도 애기보따리를 짊어지고 뛰쳐나와 합세를 했다. 의식과 무의식의 충돌이 이 정도 위세를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미래의 비전임에 확실하다.

 

이 문제를 조금 더 깊이 고민해 보고자 한다. 딱히 남다른 이권이 따라올 리도 없는 문제지만 그렇다고 고개를 외로 돌리고 속으로만 중얼거릴 문제도 아니다 싶어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사회적 공간 개념으로 설명했던 피에르 부르디외에 대해 최근 접한 적이 있다. 생소한 이름이지만 알아갈수록 점점 더 그의 이론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부르디외는 매우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프랑스 그랑제꼴(자신이 그렇게 비판하던) 대학을 졸업해 학자의 길을 걸은 사람이다. 그는 서구를 휩쓴 68혁명에 크게 고무되었던 사람이다. 68혁명은 그에게 있어 희망과 좌절 즉 환멸의 새로운 이름이었다. ‘금지만이 금지된다’ ‘구속 없는 삶을 즐겨라’ ‘혁명을 생각할 때 섹스가 떠오른다. 등 당시 슬로건에서 보이듯 기존 정치체제와 도덕 관습에 대한 전면적인 반란이었다는 점에서 정치적 종교적 철학적 입장에 따라 열광과 혐오라는 극단적인 반응을 낳은 혁명이었다.

 

보수파에게 ‘68년 5월’은 바로 무질서와 파괴의 끔찍한 악몽이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68년 5월을 도덕과 권위, 국가 정체성 위기의 근원으로서 청산돼야 할 유산으로 지목, 이 같은 입장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영국 철학자 로저 스쿠루턴도 최근 한 월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당시 차를 불태우던 젊은이들은 책임감이 없었다”며 “도덕과 정신의 재앙이었다”고 평가 절하했다. 그러나 진보적 입장에서는 68년 5월은 정치혁명이라기보다 억압적이고 고루한 사회 관습을 뒤바꾼 문화혁명의 분수령으로 기억되었다. 프랑스 역사학자 필립 아티에르는 호주의 일간 ‘에이지(The Age)’에서 “변화가 하루 밤새 일어나지 않았지만, 학교와 가정 직장 등에 걸쳐 프랑스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고 주장했다. ‘나의 68혁명’을 펴낸 가이스마르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혼 경력 등의 화려한 사생활에다 유대계 뿌리가 있는 사르코지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68혁명이 만들어 놓은 문화적 변화 덕분이었다”고 주장했다.

 

가녀린 촛불 앞에서 흔들리는 건 촛불이 아니라 정작 대통령과 그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이익계층들이다. 촛불이 무서운가. 하늘거리는 염원일 뿐이다. 군사 정권 때처럼 우리는 휘발유를 끼얹고 옥상에서 뛰어내리지 않는다. 최루탄을 맡아가며 몸싸움을 벌이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촛불 하나씩 들고 민중을 위한 민중에 의한 민중의 시위문화를 만들고자 애쓰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촛불은 공포의 빨간 불이 아니라 생명의 초록 불이다. 부르디외가 천착한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주제로 접근해 보자면, 그는 ‘왜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사회 구조 속 주류로부터 소외당하는가?’ 하는 문제, 둘째로 ‘왜 68년의 무정부주의자들은 다시 안락한 사회의 품으로 안겼는가?’ 하는 문제, 셋째로 ‘왜 자신의 계급과 어긋나는 정치적 선택들이 비일비재 한 것일까?’ 하는 문제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사회적 공간이라고 하는 거시적인 구조 개념을, 부르디외는 이념이나 계급 혹은 자본주의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인류문화적인 의미로 재해석했다. 그만큼 개인의 공간과 가치가 중요하다는 주장일 것이다. 분화적 편차들의 체계 즉, 사회라는 상징적 공간 안에서 파편화되어 어딘가에 위치해 있는 개개인과 그 관계들을 중요시 하자는 부르디외의 이론은 사금파리의 미학을 반증하기라도 하는 걸까.

 

1984년 장창환 선생님에 의해 지어졌던 ‘승리의 노래’ 가사를 살펴보면 끔찍하다.

무찌르자 침략자 외치는 소리/ 맹호 같은 용사들 총검을 들고/ 청춘의 끓는 피로 죽엄을 넘어/ 적군을 물리치고 용진하노라/ 중략 우리들은 다투어 진두에 서서/ 철의 장막 삼팔선 쳐부수고서/ 남북통일 큰 길로 앞서 달리니/ 백두산 영봉 위에 새날이 온다. 20세 이상 되는 학생들에게 군가처럼 불려졌고, 초등학교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도 꼬박꼬박 수록되었던 노래다.

 

지금 인터넷 사이트에서 그 작사자의 이름을 검색해보라. 음악가들한테 물어봐도 그런 인간 모른다고 답할 것이다. 질곡의 역사는 단절도 없이 길기만 하다. 요즘 아이들에게 간밤에 무슨 꿈을 꾸었냐고 물어보라. 혹시 북한 공산당이 탱크를 몰고 내려와 집 안마당을 점령하는 꿈을 꾸지 않았냐고 물으면 아니요 고개를 가로 저을 것이다. 중학교 때까지도 나는 전쟁 꿈, 머리에 뿔 달린 괴뢰군이 칼빈총을 들고 우리 가족을 위협하는 꿈을 허다하게 꾸었다. 반공교육 덕분이다. 멀쩡한 인간을 괴물로 악마로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한 세상, 아이러니가 팬터마임을 벌인다.

 

한 학급에서 상위권 점수에 드는 아이들은 소수다. 그 나머지 아이들은 자기가 왜 뒤쳐져야 하는지도 모른 채, 나중에 커서 공부 잘하는 아이의 뒷설거지나 하고 사는 것을 당연시 여기게 된다. 그때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엄마가 과외를 한 과목만 더 시켜줬더라도 이렇게 고생하고 살지는 않았을 텐데 하며 자격지심을 키운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이지 개인에게만 책임을 지울 문제는 아니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형설지공이라는 말도 촌스러운 말이 되었다. 시대가 바뀌면서 언어도 죽는다. 어제 살아있던 것들이 오늘 아침 죽어 있다. 급격한 변화의 물살 속에서 과연 무엇이 실체요 진리라고 쉽게 단언할 수 있을까. 현대를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우리 어른들이 가르칠 수 있는 살아있는 언어를 찾아주는 일도 숙제다.

 

부르디외의 교육이론을 살펴보자. 부르디외는 집단이나 계급들 사이에 존재하는 권력관계가 AP(교육행위)체계를 결정하는 요인이며, 지배집단이나 지배계급은 고유한 주입양식에 따라 특정한 것을 특정한 사람들에게 무한히 제공하면서 사회를 지배한다고 한다. 사회 구성체 내부에서 지배적인 AP(교육행위)는 TP(교육 작업)를 통해 작동된다. 고로 TP(교육작업)가 지배적인 AP(교육행위)를 작동시키는 수준이 향상될수록, 지배문화의 정당성을 훨씬 잘 주입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지배 이데올로기를 완벽하게 주입할수록 그것은 지배문화의 정당성을 훨씬 잘 주입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글도 그 당시 이성계의 통치세력을 확장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지배자의 통치 도구다. 국민을 가엾게 여겼다는 진의를 다시 파악해볼 일이다.

 

일제 식민지 통치하에 있을 때 우리 민족은 두 부류로 갈라졌다. 지배자에게 아양이나 떨며 돈과 커다란 정원이 있는 집을 얻어 배 불리며 살던 자와 신사참배 거부니 삭발 거부니 창씨개명 반대니 시위하던 자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자들이 무수하다. 강대국에게 민족 자존심을 팔아먹는 위정자들은 독립운동을 하다 피 흘리며 죽어간 윤봉길 의사나 김구 선생을 기억할 일이다. 식민지의 노예근성은 곳곳에 독버섯처럼 번식하고 있다. 갇혔다고 생각하면서도 뚜렷한 의식을 잠재운 채, 배만 도닥이고 있는 자신이 그렇지 아니한가. 너도나도 시청 앞으로 여의도로 나가자는 말이 아니다. 상징적인 공간은 제한이 없다. 보이지 않는 가상공간, 인터넷과 핸드폰의 액정이 젊은이들에게 더할 나위없는 혁명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시대다. 틈새에서 숨 쉬는 민중이 소수 지배계급의 주입이론에 더 이상 현혹될 필요가 없다. 지식인들의 비릿한 양심을 탓 할 필요도 없다. 아니 우리 아이들이 부르는 랩도 저들에겐 아깝다. 이름 없는 작가의 발언도 어쩌면 그들에게는 가치가 없겠다.

 

의식을 갖춘 시민들 욕심 없는 가난한 민중들이야말로 미래를 여는 양심이며 자아와 세계를 움직여 가는 동력이다. 두려운 것은 맘모스 신이 아니다. 돈이면 다 된다라는 생각으로 의식 없이 행동하는 부자들도 절대 아니다. 삼겹살은 질겨서 비프스테이크니 부드러운 고기만 먹는다는 사람들이 황금 똥을 싸는 것도 아니고 보면 당연 돈은 똥이다. 서민의 똥은 밥이 된다. 무념의 서론에 어혈이 많이 맺혔나 보다. 양심은 이렇듯 인성을 쪼아대는 자유로운 새의 부리같다. 끝으로 나는 촛불 시위에 나선 우리 이웃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진정한 관심끌기를 위해 용맹스럽게 나선 자들을 북돋우기 위해 시 한편을 소개해 올린다.

 

전에 고등학교 때 한창 정치에 꿈이 부풀어 있을 때

국회의원 딸에게 편지를 보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대학 갓 들어가 예술이니 사상이니 미쳐 있을 때

유명화가의 전시회에서 심오한 질문을 해댔다

화가는 한참 쳐다보더니 쌩까버렸다

다시는 글 안쓴다고 군대에 가서는 한창 뜨고 있던

여류시인에게 오밤중에 전화를 했다 그녀가

정중히 전화를 끊었을 때 그때도 참 부끄러웠다

그러나 두고두고 창피한 것은 회사 들어가

처음 만난 여자 앞에서 노동자들이 불쌍하다고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

 

이성복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

 

2008. 5. 25 오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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