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왕록(逝往錄) (전반생략)
사나이가 서른이 훨씬 넘어서 만일 상배(喪配)를 한달 것이면 다시 새로운 행복을 기대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리라. 친구를 잃은 것과 안해를 여윈다는 것을 한가지로 비길 것은 아니로되 삼십 평생에 정든 친구를 잃고 보면 다시 새로운 우정의 기쁨을 얻는다는 것은 진정 어려운 노릇에 틀림없다.
남녀 간의 애정이란 의외에 속히 불붙는 것이요 상규를 벗는 경우에는 그야말로 전광석화의 보람을 낼 수도 있는 노릇이나 우정이란 그렇게 쉽사리 익어질 수야 있으랴? 적어도 십 년은 갖은 곡절을 겪은 후라야 서로 사랑한다기보다도 서로 존경할 만한 데까지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랴. 우정이란 대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우정이란 연정도 아니요, 동호자끼리 즐길 수 있는 취미에서 반드시 오는 것도 아니요, 또는 동지라고 반드시 친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설령 정견(政見)이 다를지라도 극진한 벗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더군다나 기질이나 이해로 우정이 설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밝은 사실이다.
그러한 것으로 미루어보면 친구는 안해와 흡사하다. 부부애와 우정이란 나이가 일러서 비롯하여 낫살이 든 뒤에야 둥글어지는 것이 아닐까? '선인과 선인의 사이가 아니면 우의가 있을 수 없다 -기께로'
내가 어찌 감히 선인의 짝이 될 수 있었으랴. '악인도 때로는 기호(嗜好)를 같이 할 수 있고 호오(好惡)를 같이할 수 있고 공의를 같이할 수 있는 것을 보아오는 바이나 그러나 선인과 선인 사이에 우의라고 일컫는 바는 악인과 악인 사이에는 붕당(朋黨)이다 - 기께로.'
내가 스스로 악인인 것을 고백할 수도 없다.
스스로 악인인 것을 느끼고 말할 만한 것은 그것은 선인의 일이기 때문에!
* 채란타이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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