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詩魚들 / 오정자
여기서 그만 할 때 다시 온다
이만하면 충만했다 할 때
선한 눈빛일 걸 알아버렸을 때
견딜 수 없는 아침 해처럼 튕겨 오른다
수군대는 바람의 살결 흔들며
춤추며 무죄의 얼굴로 나타나는 저,
포승자박의 팔목을 끊고 달려오는 저,
피아노시모의 화음, 둘!
언제나 여기서 그만 할 때 돌아간다
이만하면 충만했다 할 때
착한 빗물이 그림자를 지워 줄 때
조용히 되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오지 않는다.
시가 現代라는 옷을 걸친 이후에 '악세사리 Accessory'처럼 애용되는 '난해'가 그 무슨 미덕처럼 되어버린 이 기이한 시대에 이처럼 가끔 가지치기를 해주는 명료한 시도 있어야 하는 법. 詩語라는 건... 한정된 삶의 답답함, 혹은 캄캄함에서 탈출하여 시간(세월)의 흐름이라는 不可視的인 대상을 관통하고 나아가 정신이 지향하는 극대한 자유, 혹은 열려진 세계의 바다를 헤엄쳐가는 물고기와도 같은 것. --- 이른바, 詩魚
근데, 시인이 월척은 고사하고 얼추 생겨먹은 잔챙이마저 낚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 왜냐하면, 시어를 낚는 낚시꾼(시인) 자체가 합리적 기지(機知 or 旣知)의 세계와, 지극히 상식적인, 즉 상식만의 테두리로 갇힌 세계로 부터 끊임없이 탈출하고 있지 않으면, (~ ing) 제대로 된 詩魚는 아예 입질조차 안 하기 때문. 더욱이, '이만하면 충만하다거나 여기서 그만'이라는 自滿 내지 자포자기의 심정은 더 이상 낚시질을 하지 말자는 얘기.
짧은 脈絡의 시이지만, 시인이 시어 앞에서 <끊임없이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簡明하게 말해준다. 새벽은 새벽에 눈뜬 자만이 볼 수 있듯이, 시어 또한 그러한 것을. <안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