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시작 / 박종화
한 알의 씨앗이 있음에
저 아름드리 나무도 있다는 걸
우리는 가끔씩 잊고 살지
어쩌다 한 번쯤 생각이 나도
몰래 지우려 하지
모래알처럼 초라해 보이는
자신을 탓하기도 하고
주위를 둘레둘레 눈치 보기도 하지
세상이 만들어 논
거대한 나무숲에 앉아
제멋대로 키를 재고
제멋대로 큰 숲이 되려 하다 보면
소중한 씨앗의 흔적은 사라져 버리기도 하지
나무는 씨앗으로 자라는 것
나무도 사람도 저 아름드리가 되고 나면
오늘의 초라함들도 살포시 웃어 줄 것을
애써 지우려 하지
한심한 줄도 모르고
스스로를 깨끗이 지우려 하지.
천년 사랑 / 박종화
천년에 한알씩 모래를 나르는 황새가 있었단다. 그 모래가 쌓여 산이 될 때까지 너를 사랑하고 싶다. 천년에 한번 피는 꽃이 있었는데 그 꽃에 꽃잎이 쌓이고 쌓여 하늘에 닿을때 까지 너를 사랑하고 싶다. 학은 천마리를 접어야 행복을 가져다 주지만 나에겐 너만 있으면 행복하다. 하늘에게 소중한 건 별이고 땅에 소중한 건 꽃이고 나에게 소중한 건 바로 너 란다. 내가 한강에 백원을 빠트렸을 때 그것 찾을 때까지 우리 사랑하자. 예전엔 못이룬 사랑 지금은 편한 사랑 나중에 편안할 사랑 바로 너란다. 장미꽃은 사랑 안개꽃은 죽음을 뜻하는데 나는 너에게 안개꽃에 장미를 꽃아 주고싶다. 왜냐면 너를 죽도록 사랑 하니까. 영혼이 맑은 그대 일생을 통해 만난 그대 이 세상 다 변해도 사랑해요 영원히. 햇살이 눈부신날 투명한 유리병에 햇살을 가득 담고 싶다. 너의 흐린 날에 주기 위해서. 사랑한단 말이다 사랑한단 말이다 사랑한단 말이다.
박종화
1901. 10. 29 ~ 1981. 1. 31 서울시인·소설가·문학평론가
민족예찬을 주제로 한 역사소설가로서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했다. 호는 월탄(月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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