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의 달리기 - 신용목
오늘은 당신 마음을 말아 쥐고 계주를 하겠습니다. 첫 번째 눈사람이 두 번째 눈사람에게 두 번째 눈사람이 세 번째 눈사람에게. 결승점을 통과하면 쓰러져 엉엉 울겠습니다. 서로 키를 바꾸며 서로 표정을 바꾸며 서로 그림자를 바꾸며. 오늘 당신 마음은 따사합니다-달궈진 불판처럼. 오늘 당신 마음은 붉습니다-불판의 고기처럼. 한 점 불덩어리를 삼키고 죽음이 살찌는 한 낮. 뜨거워 뜨거워 뜨겁게 달리겠습니다. 기꺼이 먼 석양 붉은 물살이 되겠습니다. 그러고도 오직, 여백인 나.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다 돌고 나면 겨울은 공터만 남겠지요. 트로피처럼 바닥에 놓인 모자와
<한국대표시인 70인- 시, 사랑에 빠지다>
하염없는 걸 좋아하는 내게 당신은 ‘신발을 잃어버리는 꿈을 꾸었니? 아니면 발이 너무 시린 꿈을 꾸었니?’하고 다정히 물었다. 내가 미로의 입구에 반할 때, 너는 태아처럼 발가락을 꼭 붙이고 거의 없는 빛깔로 이 한 방울의 생을 건넜다. 때문에 이것은 두 번째에 의해서만 첫 번째일 수 있는 생. 없는 것에 침잠하는, 불후(不朽)하는, 당신의 첫 걸음에서 살점의 냄새가 맡아진다. 그때마다 거꾸로 매달린 박쥐는 놀라 혼비백산하고, 그때마다 잠이 문드러졌다. 그러나 나는 죽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삶으로 하고 있다. 아직 오지 않은 세상에서라도 죽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조연호 시인「농경시」 중에서
'운문과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경신 <타자기> (0) | 2012.05.25 |
---|---|
김인희<돌아오지 않는 강> 외 1편 (0) | 2012.05.22 |
권혁웅 시인의 시편들 (0) | 2012.05.20 |
이병률 시인의 시편들 (0) | 2012.05.19 |
이형기 시인의 시편들 (0) | 2012.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