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반역의 시계 - 박양근

미송 2012. 6. 18. 10:48

 

 

반역의 시계 / 박양근

 

물건도 제대로 놓여야 제 구실을 한다. 하다못해 단추도 제자리에 있어야 옷 모양이 반듯해진다. 한번 튀어보겠다고 안팎을 뒤집거나 좌우를 바꾸면 구실을 하기는커녕,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어지러운 세상일수록 영악해야 그나마 살아갈 수 있는 게 현실이라고 하겠다.

한때 '거꾸로 보는 세상'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지금은 그 풍조가 다반사가 되어 어른이 아이들에게 쩔쩔매고, 선생님이 학생의 눈치를 살피고, 상사가 부하의 기분을 맞추어야 한다. 민주적일지는 모르나 세상만사가 정도를 잃은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제는 거꾸로 보아야 제대로 본다 할까.

 

어찌 보면 애당초 비뚜름한 세상이었다. 어린이의 생각은 무시되고 위정자들의 말은 거짓인 줄 뻔히 알면서도 믿어왔다. 갖지 못한 이유로 가진 자의 위세에 눌려 지내기도 했다. 그래서 거꾸로 보고 뒤집어 보자는 발상의 전환이 호응을 얻기도 하는지, 우스개라기보다는 옳게 된 세상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푸념이고 한풀이라고 여긴다.

 

거꾸로 된 경우가 적지 않다. 누구든지 한 번쯤은 무의식으로 거꾸로 행동한다. 양말을 뒤집어 신거나 속내의를 뒤집어 입는다. 만일 찜질방에 갔다가 내의를 거꾸로 입고 온 날에는 잠자리가 내내 시끄러울 것이다. 이런 착각을 건망증으로 돌려보기도 하지만 곰곰이 헤아려보면 억울한 심정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심정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아래 위, 안과 겉을 구분하지 않아도 되는 신상품이 자주 눈에 띈다. 약삭빠른 업자들은 안감과 겉감의 무늬는 물론, 실밥 부분까지 똑같게 디자인한 잠바를 팔기도 하고, 등산복이나 이불은 아예 양쪽을 모두 사용하도록 재단한 것이 적잖다. 언젠가는 CD판도 양면 사용 가능해지리라고 기대해 본다. 이런 저런 이유로 억눌린 마음을 헤아려준 상품이니 고맙기 이를 데 없다.

 

내게도 거꾸로 살고 싶은 본능이 있는가 보다. 시계를 거꾸로 차는 버릇이 그것이다. 반항의 세대도 아니고, 튀려는 나이도 아닌데 그 습관은 벌써 40년을 넘기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계를 바늘이 도는 방향으로 찬다. 초창기의 시계는 태엽으로 감은 만큼 오른손으로 시각을 고치거나 시계밥을 주기 위해서 불가피했다. 이런 방법이 습관화되어 전자시계가 출현한 후에도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

 

내가 시계를 거꾸로 찬 계기는 우연히 생겼다. 세상을 등지겠다는 거창한 명분이 아니었다. 대학에 다닐 무렵, 내가 살던 집은 가파른 달동네에 자리했다. 산동네답게 시멘트 계단은 커녕 하수도마저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개숫물을 예사로 대문밖 길에 뿌려댔다. 당연히 무릎을 깨거나 허리를 삐는 일이 겨울에는 허다했다.

 

한겨울 어느 날, 비탈길을 오르다가 빙판길에 미끄러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설상가상 손목시계의 돌출부분이 왼쪽 손등에 돋아난 정맥 위를 짓눌렀다. 송곳으로 찔린 고통이나 망치로 얻어맞은 통증도 그만 할까. 형언할 수 없는 진통이 말초신경을 타고 번져가더니 이마에서 진땀이 돋았다. 시계는 졸지에 성능좋은 고문도구가 되어버렸다.

 

집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뭔가 예방책이 필요할 것 같았다. 불현듯 시계를 거꾸로 차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미쳤다. 불편하다면 문자판이 쉽게 식별되지 않는다는 점이겠지만 일주일 정도 지나면 괜찮으리라. 말 그대로 조금씩 글자판에 익숙해졌고 지금은 시계를 바로 차면 시각을 읽지 못할 지경이 되어버렸다.

 

따져보면 시계를 거꾸로 차는 장점이 여간 아니다. 우선 상대방에게 베푸는 선심이 그 하나다. 지금은 시계가 없는 사람이 없겠지만 어쩌다가 상대방이 내 시계를 바라보면 단번에 시간을 알아버린다. 문자판이 자신을 향해 있어서 겸연쩍게 물을 필요가 없어진다. 은근하게 배려하는 친절이 어찌 적다 하겠는가. 게다가 거꾸로 찬 시계를 보면 저런 정신 나간 사람이 있나 하면서 웃는다. 각박한 세상에서 자신의 영민함에 자족하는 웃음을 선사한다는 것도 덤이다. 나아가 내가 다시 넘어지더라도 손등을 다칠 위험이 줄어든다면 그것도 약이다. 이보다 밑천 없는 장사가 어디 있을까. 웃음을 베푸는 일일일선一日一善이며 먼 훗날에 들어갈 출입문도 달라질지 모른다.

 

진짜 즐거움은 따로 숨어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반기를 드는 것이다. 술에 취하지 않고서도 냅다 소리를 지르고 싶고, 출근 시간에 영남알프스로 드라이브를 가는 호기를 부려보고 싶지만 나이라는 체면과 직업이라는 굴레가 가야 할 길을 가로막는다. 그럴 때 거꾸로 된 시계를 찬 주먹을 하늘로 번쩍 들면 정말이지 속이 시원해진다. 거꾸로 살려는 저항정신이고 세상을 향한 이보다 큰 반역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모두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반역의 기벽을 하나쯤 간직하면 세상 살기가 조금은 쉬워지리라 믿어 본다.

 

나는 오늘도 시계를 거꾸로 찬다. 세상을 더 이상 거꾸로 볼 필요가 없을 때까지 내 시계는 거꾸로일 것이다. 그 때가 하루 빨리 다가오기를 소망하면서 반역의 시계를 하늘로 번쩍 올려본다.

 

《에세이스트》2005년 창간호

 

 

 

 

 

 

 

'운문과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병권<숨어서 피는 꽃>  (0) 2012.06.28
박양근<봄날에 켜는 가을소나타>   (0) 2012.06.20
방민호의 시편들  (0) 2012.06.16
심보선<좋은 일들>  (0) 2012.06.14
김수영<꽃잎2>외 1편   (0) 2012.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