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문혜진<독립영양인간1>

미송 2012. 9. 10. 22:45

     

     

     

    독립영양인간 1

     

    먹지 않고 살 수 있다면

    무엇엔가 걸맞은 행동을 하기 위해

    백화점에서 최신 셔츠에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머리를 빗어 넘기지 않아도 좋으리라

     

    먹고살기 위해 뼈 빠지는 일은 유머가 될 것이며

    흐느적거리는 새로운 인간들 때문에

    분류학자는 할 일이 생길 것이다

     

    붉나무 아래 도마뱀 한 마리

    앞다리가 뒷다리를 따를 수 없고

    몸통이 머리를 가눌 수 없는

    눈이 삽백육십 도 돌아가는 대관람차 안구

     

    폐로 흡수한 수분으로 영양분을 직접 얻는

    독립영양인간 혀는 퇴화해

    인생을 말로 때우지 않아도 될 것이며

    죽을똥 살았다는 뻔한 성공기는 농담이 될 것이다

     

    해변에서 밀려난 산호처럼 말라 가

    대지에 뿌리를 두지 않는 꼬리겨우살이

    몰락한 공산당 기관지가 지어낸

    허풍인지는 몰라도

    언젠가 나는 폐로 빗물을 흡수해

    에너지로 바꾸는 독립영양인간으로 진화할 것이다

     

    부작용은 맹독성 오존에 의한 면역결핍

    어느 시대나 부작용은 있었으니까!

     

     

    시집『검은 표범 여인』, 민음사(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