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남긴 말 / 오정자
당신 손을
슬쩍 떨쳐버릴까 하는데요
홀로 홀가분한 의지로
지향 없이 걸으려 하는데요
꽃잎이 흩날립니다
숲 속에 빽빽한
실수투성이 나무들이
외로운 내색도 없이
무거운 어깨를 서로 비비고 있습니다
이쯤 해서 당신 손을
슬그머니 놓아버릴까 하는데요
등이 따갑도록 당신의 눈길을
듬뿍 의식하면서
다소곳한 의향으로
당실당실
춤을 추듯 걸으려 하는데요
바람이란 무엇인가? 그건 허공의 목소리요, 동시에 정체의 구속으로 부터 활보의 자유로 向하는 소리이다. 그런 바람에 시인의 모든 걸 맡겨 버린, 정신적 환타지 Fantasy라 할까. 그 어느 날, 나도 불쑥 치솟는 그리움 때문에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하던 일을 멈추고 등을 벽에 기대고 한참동안 눈을 감고 내 정신의 거울 속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나를 본 적이 있다. 하여, 때론 나를 구속하는 그리움으로 부터 자유롭게 놓여지고도 싶은 것. 그래서 불가에서 말하길, 그리움마저 집착이라 한 걸까. 비록, 등이 따갑도록 그리움의 눈총을 받더라도 바람처럼 指向없이 걷고 싶다. 아, 바람이여. 너의 정처없음이여. 네 흐름 속에 나를 머물게 하라. 그 머물음 속에서 나를 벗어 버리게 하라. 나를 벗어 버리려는 그런 나마저 또 벗어 버리게 하고, 永遠의 자유에 들게 하라. <안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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