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영양이 풍부하다 / 김현승
무르익은
과실의 밀도와 같이
밤의 내부는 달도록 고요하다.
잠든 내 어린 것들의 숨소리는
작은 벌레와 같이
이 고요 속에 파묻히고,
별들은 나와
자연의 구조에
질서 있게 못을 박는다.
한 시대 안에는 밤과 같이 해체나 분석에는
차라리 무디고 어두운 시인들이 산다.
그리하여 토의의 시간이 끝나는 곳에서
밤은 상상으로 저들의 나래를 이끌어 준다.
꽃들은 떨어져 열매 속에
그 화려한 자태를 감추듯....
그러하여 시간으로 하여금
새벽을 향하여
이 풍성한 밤의 껍질을
서서히 탈피케 할 줄을 안다.
金顯承(1913~1975) 전남 광주(光州) 출생. 숭실전문학교 문과 졸업. 숭전대교수 역임. 1934년 3월 동아일보에 <쓸쓸한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등단. 시집으로 <김현승시초>(1975), <옹호자의 노래>(1963), <견고한 고독>(1968), <절대고독>(1968) 등이 있음. 김현승은 초기에 식민지 치하의 상황을 민족적 낭만주의라 부를 만한 주관주의로 초월하고자 했으나 10여년간의 절필 생활 끝에 해방을 맞은 후, 존재를 탐구하는 시들을 썼다. 그가 집중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던 문제는 고독이었으며 시적 개성은 단단한 구조에 명징한 이미지를 구사하는 데 있었다. 만년의 시는 기독교, 특히 청교도적인 신앙에 입각하여 절대자 앞에 선 유한자로서의 인간의 고독을 탐구하였으나 역설적으로 그가 구원자로서의 절대신을 상정하였던 까닭에 그 고독은 또한 절대고독이 될 수 없는 아이러니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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