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원구식 <시감도 2013>

미송 2013. 10. 27. 08:45
    시감도 2013 / 원구식


        13인의 시인이 도로로 질주하오.
        (모두 마침표를 찍지 않는 시인들이오. 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

         

        제1의 시인이 요즘은 시에 마침표를 찍지 않는 게 대세라 하오.
        제2의 시인이 한심하다는 듯 그걸 이제 알았느냐 하오.
        제3의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마침표를 아예 다 빼버렸다 하오.
        제4의 시인이 실수로 찍힐 수가 있으니 조심하라 하오.
        제5의 시인이 시를 쓰기 전에 무조건 마침표를 빼는 것부터 가르친다 하오.
        제6의 시인이 그거 괜찮은 교습법이라 하오.
        제7의 시인이 산문시에서 마침표를 찍지 않아 성공한 시인이 있다 하오.
        제8의 시인이 그나마 마침표가 없어서 겨우 시의 꼴을 갖추었다 하오.
        제9의 시인이 그런데 아직도 마침표를 찍는 무식한 시인이 있다 하오.
        제10의 시인이 어느 사회나 꼴통이 있는 법이니 그냥 내버려 두라 하오.

         

        제11의 시인이 마침표를 안 찍으니 알딸딸해서 좋다 하오.
        제12의 시인이 마침표를 모두 빼버리니 골이 안 아파 좋다 하오.
        제13의 시인이 마침표가 없으니 뭔가 있어 보여 좋다 하오.
        13인의 시인은 마침표를 안 찍는 시인과 빼버린 시인과 그렇게뿐이 모였소.
        (다른 사정은 없는 것이 차라리 나았소.)
        그중에 1인의 시인이 문학상을 받은 시인이라도 좋소.
        그중에 2인의 시인이 시잡지를 내는 시인이라도 좋소.
        그중에 2인의 시인이 교과서에 실린 시인이라도 좋소.
        그중에 1인의 시인이 예술원 회원이라도 좋소.

         

        (쥐나 개나 마침표를 찍지 않는 세상이오.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적당하오.)
        13인의 시인이 도로로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소.
        아, 오늘밤도 별들이 밤하늘에 마침표처럼 박혀 반짝거리오.

         

         

        원구식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먼지와의 싸움은 끝이 없다》 《마돈나를 위하여》가 있다. 한국시협상 수상. 월간 《현대시》 격월간 《시사사》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