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묵(破墨) / 이인주
한 자루의 붓도 쥐어 주지 않고 스승은 나를 문전에서 내쳤다
필생을 먹처럼 살거라
캄캄했다
먹이라니, 몸으로 황칠을 하란 말인가 어디에다?
살결 같은 화선지 한 장 내려 받지 못한 나는
사족이 묶인 백서로 내팽개쳐졌다
발묵도 익히기 전 파묵이라니!
팽나무 가지가 언 하늘을 쩡, 후려치는 혹한이었다
가도 가도 깡통인 탁발
자리를 잡아도 자리를 털어도
먼지 한 점 날리지 않는 茫茫寒天
나를 얼려 나를 보존할 맥문동 관절이었다
궁하면 통한다는 도리도 비껴난 아수라였다
붓도 화선지도 없는 화공이
그림 그릴 생각을 하면
옥쇄도 없는 파천황이 마음 깊숙이 자라는 법
세상에 놓인 그 어떤 법도도 스스로 길을 벗어난다
개발괘발 걷지 않아도
모든 길들을 빨아들인 먹 한 자루가
캄캄함을 깨어 스며나는
백광으로 농담을 밝힌다
살을 에는 아픔도 부드럽게 갈아
일필휘지로 내리긋는 무명의 빛
* 현대시에 적용된 그러데이션(Gradation) 기법
'파묵(破墨)'이란, 동양 고유의 수묵화 기법 중의 하나로서 먹(墨)의 바림을 이용하여 입체감을 표현하는 화법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먹의 바림이란 명암의 점진적 이행을 의미하는데 현대미술에서는 흔히 그러데이션(Gradation)이라는 용어로 환치하여 쓴다. 이인주의 시,' 파묵(破墨)'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결정적 단초가 바로 흑색에서 백색(바탕색)으로 이행하는 그러데이션기법이다.
시적 화자는 스스로를 "팽나무 가지가 언 하늘을 쩡, 후려치는 혹한"의 엄동설한에 스승에게서 내쳐진 캄캄한 먹(墨)과 같은 존재로 인식한다. 인공의 부산물로서 시 본문에 제유(提喩)된 화공, 붓, 화선지등이 아닌 원형질로서의 먹이 함의하는 바는 예술가의 예술혼이 예술작품으로 체현되기 이전의 카오스적인 "캄캄한" 양상을 띠고 있다. 시적 화자는 예술가의 예술혼이 발아하여 예술작품으로 발화되는 도상에서 스스로를 수행에 별 진전이 없는 빈 "깡통" 소리만 요란한 "탁발"승으로 빗대어 자학하거나, ‘먼지 한 점 날리지 않는 망망한천(茫茫寒天)’ 아래 잡초처럼 모진 목숨만 연명하는 겨우살이 풀인 "맥문동"으로 비하하기도 한다. 궁하면 통한다는 단순한 명제도 요령부득의 캄캄한 현실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뿐임을 뼈저리게 실감하며 자괴감의 "아수라"에 빠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으로 체화된 시적 화자의 잠재태로서의 예술혼이 끝내는 "파천황(破天荒)", 즉 천지가 아직 열리지 않은 혼돈한 상태를 깨고, 이전에 그 어떤 예술가도 그려내지 못한 독창적인 예술작품을 생산해 낼 것임을 확신한다. 이러한 확신이 가능한 이유는 이 단계에서의 먹은 이미 예술가로서의 지난했던 고행과 아수라를 관통하여 "모든 길들을 빨아들인 먹 한 자루"로 거듭났다는 인식의 전환 때문이다. "모든 길을 빨아들인 먹 한 자루"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시적 화자의 "팽나무 가지가 언 하늘을 쩡, 후려치는"듯한 매섭고 깊은 사유와 다시 조우하게 된다. 먹의 연원이 주검의 연료를 태운 그을음을 모아 만들어진다는 것을 상기할 때, 먹은 만물의 죽음과 내통하는 모든 길의 종착지인 동시에, 먹이 화공의 예술혼으로 체현되어 예술작품으로 승화되기 시작할 때에는 잠재된 모든 길의 출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인주의 시 '파묵(破墨)'은 제목의 중의성과 본문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구체성이 날줄과 씨줄로 유기적으로 정교하게 직조된 수작(秀作)이다. 먹(=어둠,몸)을 깨트린다는 파묵(破墨)이라는 제목 자체의 의미망 위에,
이 시의 또 다른 제목이기도 한 전통 수묵화의 파묵(破墨)기법으로, 즉 그러데이션기법으로, 시의 기승전결을 완벽하게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즉, 첫 연의 "캄캄"에서 출발한 시각적 이미지이자 시적 화자의 내면적 심리상태가 마지막 연에서는 "백광" 혹은 "무명의 빛"으로의 명암의 점진적 이행을 매끄럽게 재구축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과학적 사실은 캄캄한 어둠과 밝은 빛은 자웅동체라는 것이다. 색의 3원색인 파랑,빨강,검정(C,M,Y)을 합치면 검은 색이 되지만 빛의 3원색인 빨강,파랑,검정(R,G,B)을 합치면 흰빛이 된다는 사실이다. 색이 빛을 흡수하느냐 반사하느냐의 차이에 따른 시각적 변화인 것이다. "캄캄함을 깨어 스며나는~ 무명의 빛"은 예술혼이 어떻게 어둠에서 빛을 창조하는가에 대한 깊은 사색의 틀을 제공함과 동시에, 온몸으로 시를 밀고 나가겠다는 이인주 시인의 결의에 찬 시론이기도 하다.
이 시의 아쉬운 점 하나는 난해한 한자의 관용어 사용이 빈번하여 독자제위들께 자칫 현학적으로
비춰지거나, 시의 독해를 방해하는 한 요소로 작용하지 않을까하는 작은 우려감이다. (단평 - 김봉식)
- 2009년 정표 예술 포럼 무크지 창간호 <정신과 표현> 에서 -
이응춘 作
<부록>
石濤 (1642~1707)는 중국의 화가이자, 회화이론가이죠. 또한, 승려이기도 했는데. 법명法名은 도제道濟.
팔대산인八大山人과 함께 청淸 초기의 가장 유명한 개성주의 화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석도는 팔대산인과 마찬가지로
만주족이 아닌 한족漢族 출신인데 그는 명나라 종실 출신으로 본명은 주약극朱若極이라고 하고. 계림왕부桂林王府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선종 사찰에 맡겨져서 승려로 자랐다고 하죠.
타의로 불가에 입문하였으나 불교사상 외에도 노장사상 등에 관심이 많았고 유.불.도의 사상과 서화를 두루 익힙니다.
성인이 된 후에는 선성宣城, 남경南京, 북경北京 등으로 옮겨 다니며 살았다고 합니다. 명나라 유민화가였으나 남경에 머무르던
중인 1684년과 1688년에는 淸의 강희제康熙帝를 배알하고 자신이 그린, <북경명승화책北京名勝畵冊>과
<해안하청도海晏河淸圖>를 진상하기도 하였고.
북경에 머무르며 청의 관리, 문인화가 등과 교류를 쌓기도 했으나, 1692년에는 양주揚州에 정착하고
그곳에서 말년을 보내며 그림을 그리는 한 편으로 자신의 회화사상을 정리한 총 18장으로 구성된
『화어록 畵語錄』을 저술하였죠.
석도일획론
남경에서 돌아온 후에 석도는 제법 많은 그림을 그렸다.
시간을 더욱 아끼는 모습이 저물어가는 인생에 대해 초조함을 느끼는 것이 분명했다.
[묵필매화도축 墨筆梅花圖軸]과 [광산독서도 匡山讀書圖]를 그리고, [산수책]을 엮었다.
그는 한순간에 무수한 깨닮음을 얻었다.
“고상(제자 이름)아, 내가 아주 사치스런 생각을 했구나.”
고상은 스승을 응시했다.
말을 아끼는 그는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쓸데없이 함부로 말하지 않았다.
“책을 한 권 쓰고 싶구나.” 석도는 고상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시인에게 시화詩話와 시론이 있는 것처럼, 나는 그것을 ‘화어록畵語錄’이라 하고 싶다.
아, 열몇 살 때부터 그림을 그렸으니 벌써 50여 년이 지났구나.
최근에 나와 그림의 관계는 마치 한 쌍의 원수 같은 연인과 다를 바 없다.
서로를 그리워하지만 알 수는 없고, 알지만 함께 할 수 없는 연인 말이다.
나와 그녀 사이에는 늘 엷은 장막이나 희뿌연한 안개가 드리워 있어서
바라 볼 수는 있지만 다가 갈 수는 없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 그녀와 진정으로 일체가 되고 하나가 된적이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우리 사이는 갈수록 점점 가까워지고 있고, 가까워 질수록
가까운 듯 먼 듯 느껴질뿐이다.
이런 느낌은 아마도 생명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 될 것이다.
기왕 이렇게 가까워진 이상, 나는 그것을 설명하고 싶구나.
단지 후세 사람들에게 그것에 대해 더욱 명확한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나 자신에게도 그것은 하나의 갈망이다.”
“좋은 생각입니다. 당장 시작하셔야 합니다.”
“그런 생각이 왜 없겠느냐? ‘이 속에 참된 의미 있어,
말하고자 하나 문득 말을 잊어버리네’라는 도연명의 시구가
바로 내가 처한 난처함을 잘 설명하는 것 같구나.”
“그러면 스승님은 회화의 가장 기본이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고상은 스승의 사고에 자극을 주어 영감을 불러일으킬 작정이었다.
“일획이다. 어떤 그림이든 모두 일획에서 시작하지.
하지만 이 일획은 천지 밖의 억만 개의 필묵을 수용한다.
이른바 그림이란 필묵을 버리고서 어찌 그 형체를 이를 수 있느냐?
이 일획은 보통 사람이 그린 평범한 선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세계와 인상에 대한 완전한 이해이며,
그리고자 하는 그림 전체에 대한 창조적인 기초이다.
그리는 사람에 따라 상이한 일획이 만들어지고,
작품의 우열과 평가가 드러나는 법이다.”
“그러면 일획론에서 시작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렇구나, 말하고 보니 속이 확 뚫리는 것 같구나.
장법의 왜곡과 조화, 필묵의 건조함과 촉촉함, 개성의 평이함과 기이함 등은
모두 이 지점에서 점차 외연을 확대해도 되겠구나.”
“정말로 근사한 일입니다. 스승님께서 늘 말씀하시는 ‘붓이 마르면 아름답고,
붓에 물기가 많으면 속되다’, ‘생활의 선’, ‘교양의 영혼’등과 같은 것이지요.
스승님께서 이러한 내용을 쓰신다면 그것은 만금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말씀이지 않겠습니까?”
“그렇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벌써 장과 절이 일목요연하게 나누어져 있단다.”
“보아라, 일획을 기초로 삼은 연후에 요법了法, 변화,
존수尊受, 인온, 필묵, 운완運腕, 준법, 경계, 혜경이 있다.
그런 다음에 다시 산천, 임목林木, 해도海濤, 사시四時, 원진遠塵,
탈속, 겸자兼字, 자임資任이 있다. 이렇게 한 章씩 써가는 것이다.”
“맞습니다. 매 장마다 스승님만의 독특한 견해를 밝혀 스승님의 화론을 이룩해야 합니다.“
“네 말이 맞다. 내 머리속은 더욱 명확해졌다. 잘 쓸 수 있을 것 같구나.”
“그런 거라면 저는 스승님을 전적으로 믿습니다.
하지만 스승님의 화법을 어떻게 귀납하실 겁니까?
회화란 결국 기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렇지. 나도 알고 있다.
내 그림이 선배 화가들의 격식을 돌파하는 데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졌지.
중년 이후로 나는 ‘어떤 법도 세우지 않고, 어떤 법도 버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나 자신의 기법이 가둔 상투성을 돌파하고자 노력한 것이다.
지금은 말이다, 지금의 사고는 이렇게 개괄할 수 있을 것 같구나.
‘법이던 아니든 나의 법을 이룬다’고 말이다.”
“법이든 아니든 나의 법을 이룬다고요?”
“그렇다.” 석도는 고상에게 이 말의 의미를 설명했다.
“나의 법은 법이기도 하고 또한 법이 아니기도 하다.
그것은 법도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나의 법을 사용했다 할지라도 또한 법이 아니다.
법과 비법의 사이에서 화가는 마치 외줄 위를 걷는 곡예사와 같다.
다 걷고 나면 천하의 大美로 걸어갈 수 있다.
더 걷지 못하고 떨어지면 大俗이 된다.
이것이 바로 화가의 고통이 생겨나는 근원이다.
결국 성공하는 사람은 드물지 않더냐?”
“혹시 알고 계세요? 사람들이 스승님의 아호를 지었다는 사실을요.”
“아호를?”
“예, 스승님을 三絶이라 부르지요. 시. 서. 화 세가지에 모두 뛰어나다고요.
제 생각에는 오늘부터 사절이라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 論絶을 더해야 합니다.”
“아니,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지. 혹여 三痴라고 부르면 모를까.
시에 미치고, 그림에 미치고, 글씨에 미쳤다고 말이다.”
(畵語錄, 359쪽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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