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광기[太平廣記-Taip'ingkuangchi]
중국 송(宋)나라 태종(太宗)의 칙명(勅命)에 따라 이방(李昉) 등이 엮은 소설집.
당나라 이전까지의 중국 각지에 퍼져 있던 소설, 설화, 전기, 야사등을 모아 92항목으로 나누어 수록하고,
그 출전을 밝혀 놓았다. 총500권이다.
수찬 대표자
이방(李昉 : 925~996) 자는 명원(明遠)이고 심주(深州) 요양(饒陽) : (지금의 河北省에 속함) 사람이다.
오대(五代) 후한(後漢) 건우연간(乾祐年間 : 948~950)에 진사가 되었고, 후한과 후주(後周)에서 벼슬했으며,
송대에 들어와 우복야, 증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를 지냈다. 일찍이 칙명을 받들어 『태평광기』를 비롯하여
『태평어람(太平御覽)』 · 『문원영화(文苑英華)』 · 『구오대사(舊五代史)』를 수찬하는 데 참여했다.
276 · 16(3532)
여 몽(呂 夢)
여몽이 오(吳)나라로 들어갔을 때 오왕(吳王: 孫權)이 그에게 학문에 힘쓰라고 권하자, 여몽은 여러 전적을 널리 공부하면서
『역경(易經)』을 위주로 했다. 여몽이 한번은 손책(孫策)이 마련한 자리에서 술에 취하여 문득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꿈속에서
『역경』 전부를 외우고는 잠시 후 깜짝 놀라 일어났다. 사람들이 모두 여몽에게 [어찌된 일인지] 물었더니, 그가 말했다.
“방금 전에 꿈속에서 복희(伏義) · 문왕(文王) · 주공(周公)을 만났는데, 그들이 나와 함께 국가의 흥망에 관한 일과 우주의
광명(廣明)한 도를 논하면서 그 정묘(精妙)한 뜻을 궁구하지 않음이 없었소. 그러나 나는 아직 그 현묘한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여
단지 하릴없이 그 문장만 외웠을 뿐이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여몽이 잠꼬대로 문장을 외운 것을 알게 되었다. (왕자년 『습유기』)
276 · 26(3542)
풍효장(馮孝將)
광평태수(廣平太守) 풍효장에게 마자(馬子)라는 아들이 있었다. 마자가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나이가 18~19살쯤 되는 한 여자가 나타나 말했다.
“저는 전임 태수 서현방(徐玄方)의 딸입니다. 불행히도 일찍 죽어서 죽은지 이미 4년이나 되었지만, 사실은 귀신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생사부(生死簿)를 살펴보면 저의 수명은 80여 세까지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 저를 소생시켜주신다면 [이승으로] 돌아가
당신의 아내가 되고자 하는데, 저를 맞아주실 수 있는지요?” 바자가 그녀의 무덤을 파서 관을 열고 보았더니 그녀는 이미 살아나 있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다. (『유명록』)
276 · 27(3543)
서 정(徐 精)
동진(東晉) 함화연간(咸和年間: 326~334)초에 서정이 먼길을 떠났는데, 꿈에 부인과 동침하여 임신을 시켰다.
이듬해 서정이 돌아왔더니 부인이 과연 아이를 낳았다. 나중에 물어보았더니 모두 그의 말과 같았다. (『유명록』)
276 · 33(3549)
왕봉선(王奉先)
어떤 귀인(貴人)이 죽은 뒤에 영흥현령(永興縣令) 왕봉선이 꿈에 그와 살아 있을 때처럼 마주 대했는데, 왕봉선이 그에게 물었다.
“그 먼곳[저승을 말함]에도 남녀간의 정이 있습니까?”
귀인이 대답했다.
“아무 날에 내 집에 가서 여종에게 물어보시오.”
왕봉선이 깨어난 뒤에 그 집의 여종에게 물었더니 여종이 말했다.
“그날 제 꿈에 낭군께서 오셨습니다.” (『유명록』)
277 · 3(3569)
송영처(宋潁妻)
후위(後魏: 北魏) 송영의 처 등씨(鄧氏)는 죽은 지 15년이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은 처가 꿈속에 나타나 송영에게 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지금 고숭(高崇)의 처가 되라는 분부를 받았기에 이렇게 작별 인사하러 왔습니다.” 그리고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떠나갔다.
과연 며칠 뒤에 고숭이 죽었다. (『몽준』)
279 · 7(3633)
이소운(李逍雲)
농서(隴西)의 이소운은 범약(范陽) 노약허(盧若虛)의 사위다. 그는 성품이 방탕하고 경솔했으며 여러 사람들과 모여 맘껏 술 마시기를 좋아했다. 어느 날 밤 그의 처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이소운과 십여명의 무리, 그리고 사이사이에 섞여 있는 창기들이 모두 머리가 풀어 헤쳐지고 옷이 벗겨진 채 긴 밧줄에 묶여 줄줄이 어디론가 쫒겨 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소운은 울부짖으면서 처를 돌아보며 작별을 고했다. 그의 처가 깜짝 놀라 깨어나 보니 베개가 눈물로 흥건했다. 이소운의 처는 이 일을 남편에게 이야기 했다. 이소운 역시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의 내용이] 서로 딱 맞아떨어졌다. 이에 그는 크게 두려워하고 질색을 하며 육식을 끊었다, 그리고는 늘 (『금강경』)을 외고 다녔고, 여러 번 스님을 청해 재를 올렸다. 이렇게 해서 3년 간 그는 아무 탈 없이 지낼 수 있었다. 후에 그는 꿈이 별로 영험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조금씩 방종하고 태만해지기 시작했다. 한번은 모임에서 한 친구가 술과 고기를 먹으라고 자꾸 권유하자 본디 거리낌 없던 성품의 이소운은 예전처럼 술과 고기를 맘껏 먹고 말았다. 이듬 해 상사일(上巳日: 음력 3월의 첫 번째 巳日)에 그는 이몽(李蒙)·배사남(裵士南)·양포(梁褒) 등 십여 명과 더불어 곡강(曲江)에서 배를 띄우고 장안(長安)의 명기를 성대히 뽑아 들여 노래와 여색을 맘껏 즐겼다. 그러나 술이 한창 얼큰했을 때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이들은 모두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광이기』)
279 · 22(3648)
위 검(韋 檢)
위검은 진사과(進士科)에 떨어졌다. 그에게는 아리따운 첩이 한 명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가슴을 부여잡더니 죽어버리고 말았다. 위검은 그녀를 떠올리며 매우 애통해하면서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해했다. 그는 술잔을 들고 시를 읊조렸는데 그 슬픔과 원통함이 손에 잡히는 듯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시를 지었다.
보검(寶劒)은 용이 되어 벽락(碧落: 하늘)으로 돌아갔고,
항아(姮娥)는 달을 따라 황천(黃泉)으로 내려갔네.
한 잔 술을 들어 저물어가는 내 청춘을 위해 기울이며,
적막한 서창(書牕)에서 홀로 지새우는 밤을 한스러워 하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꿈에 첩이 나타나 그에게 말했다.
“저는 명이 짧아 아내 노릇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이 생각을 하면] 눈물이 쏟아집니다. 후에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당신이 보내신 시에 화답을 하러 왔습니다.” 그리고는 입으로 시를 읊었다.
봄비가 부슬거려 하늘 한 점 보이지 않고,
집집마다 문 밖에는 안개 낀 버드나무.
나 지금 애간장 끊어지도록 괜한 눈물 흘리며,
즐거웠던 날 다시 날 다시 추억해보니 우리 헤어진지도 벌써 몇 년이나 지났네.
위검은 [이 꿈을 꾼 뒤] 종일토록 우울해했다. 얼마 뒤 첩이 또 꿈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곧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위검은 잠에서 깨어나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또 지었다.
흰 파도 출렁출렁 한번 가면 오지 않고,
뜬 구름 다 날아가 버린 하늘에 해는 서쪽으로 기우네.
진시황(秦始皇) 능침 위의 천년 묵은 나무도,
[능 안에 함께 묻은] 은 오리 금 오리도 모두 재로 변했네.
후에 그는 과연 죽고 말았으니, 모두가 꿈의 징조와 맞아 떨어진 것이었다.
(『서정시』)
280 · 4(3660)
부구령(扶溝令)
부구현령 아무 제(薺)는 그 성은 기억나지 않는데, 대력(大曆) 2년(767)에 죽었다. 그로부터 반년 뒤에 그 부인은 꿈에서 제와 만났다. 제의 부인이 저에게 저승에서 죄를 받았는지 복을 받았는지 묻자, 제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살아생전 진사(進士)로 있으면서 경박함에 빠져 문장을 훼손시키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을 헐뜯었기 때문에 지금은 저승의 부림을 받고 있소. 저승에서 매일 뱀 두 마리와 지네 세 마리를 내게 보내어 몸에 난 일곱 구멍을 출입하게 했는데, 차마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소. 저승의 법에 따르면 360일 동안 마땅히 이 벌을 받아야 하는데, 벌이 끝난 뒤에야 비로서 환생할 수 있게 되어 있소. 근자에 다른 일로 염라대왕께 매를 맞았는데, 이전부터 입고 있던 잠방이의 여기저기가 찢어져 나가는 바람에 사람들의 비웃을을 사고 있으니 내게 잠방이 하나만 만들어 주시오.”
부인이 말했다.
“만들 수 있는 천이 없습니다.”
제가 말했다.
“전날에 만년현위(萬年縣尉) 개우현(蓋又玄)이 명주 두 필을 가지고 왔는데, 어째서 없다고 말하시오?”
제는 또한 불상을 주조하고 법화경(法華)을 써 줄 것을 함께 부탁했다. 제의 부인이 이 모두를 허락하자 제는 그제야 떠나갔다. (『광이기』)
타이핑- 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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