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시, 비, 비
사랑해라고 고백하기에 그 자리에서 오줌을 싸버렸다 이보다 더 화끈한 대답이 또 어디 있을까 너무 좋아 뒤로 자빠지라는 얘기였는데 그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신다면서 그 흔한 줄행랑에 바쁘셨다 내 탓이냐 네 탓이냐 서로 손가락질하는 기쁨이었다지만 우리 사랑에 시비를 가릴 수 없는 건 결국 시 때문이다 줘도 못 먹는 건 그러니까 내 잘못이 아니란 말이다
- 김민정(1976~ )
△ 사랑한다는 말이 입술에서 빠져나오는 순간의 파동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사랑’이라는 말을 만들기 위해 작용했던 입술 안쪽의 질서들과 입술 바로 앞에서 먼저 뛰던 심장, 그리고 순식간에 입술과 헤어지던 말의 중량감까지. 그렇게 고백 순간에 몸 안팎에서 두근대는 세포들의 폭발적인 움직임들을 생각해본다.
얼마나 많은 말이 몸을 돌고 나와야 소통이 될 수 있을까. 이 시에서 두 사람은 소통이 안되고 있다. 남자가 고백을 하는 상황에서 나는 강한 긍정의 의미로 소변을 봐버렸다. 남자는 내가 온몸으로 반응했던 이상행동 때문에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나를 떠났다. 한쪽은 보편적이고 한쪽은 너무 난해하다. 아니 어쩌면 나에게 사랑이란 모든 보편들을 배제하고 나서야 겨우 돋아나는 몸의 질서가 아닐까. 제 몸에 도는 그 감각들을 믿으며 스스로를 배설하고 다 내어주는 일, 그게 나의 사랑이다.
현실에서 소통이 안되는 모든 사태들이 다 시 때문일 때가 있다. 일상에서 시를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세계가 이미 만들어 놓은 보편들이 흉부를 겨냥해온다. 아무래도 시시비비를 가릴 수 없는 바깥 때문에 시시비비(詩詩悲悲), 한 시인이 우울과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또 견디려고!
<박성준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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