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가게의 나날들
낙엽을 다 떨구고 서 있을 때라야 나무들의 쓸쓸함이 돋보입니다. 쓸쓸함, 그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문득,‘마음이 춥고 가난한 자가 정녕 따스한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어느 작가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마음이 따뜻함으로 넘치기에 따뜻함을 베푸는 게 아니라, 정작 춥고 가난한 마음이 되었기에 연민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역설인 듯 싶습니다.
만약 내가 부요해진 자리를 지금 차지하고 있다면 그런 연민이 싹틀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흔들리는 나무들과 길 위에 이름 모를 풀들을 들여다보니 하나같이 지구 중력에 뿌리를 내린 채 균형 잡힌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마당에 선 강아지도 네 발로 우뚝 서서 그렇습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균형감각을 잃지 않은 11월의 나무들처럼 우리 녹색가게도 그렇게 근사하게 서 있습니다.
저희 녹색가게가 학성동으로 이사를 하고, 틔움길 희망공간에서 세 번째 겨울을 맞이했습니다. 따뜻한 옷 한 벌의 나눔을 통해 이웃과 소박한 정을 많이 쌓으려 노력했지만, 수북해진 낙엽들 속에 젖은 얼굴들도 몇 있어, 아직은 죄송한 마음일 뿐입니다.
작년 여름 녹색가게에 들어와‘옷을 그냥 좀 줄 수 있겠냐’했던 분. 돈을 벌러 가야하는데 작업복이 없다고 해서 두어 벌 그냥 챙겨 드린 일이 있었죠. 한 달 후, 녹색가게 문 앞에서 기다리던 그가 출근하는 저를 보고는 누나라 부르더니, 뒤춤에 감추었던 사과 한 봉지를 휙 내밀고 얼른 돌아섰습니다. 눈물을 감추려는 것이었을까요, 앞모습을 볼 순 없었지만, 제 코끝이 찡해졌지요.
이웃과 나누고 싶은 물건들을 챙겨 가지고 나온 주부들은 녹색카드에 적립된 자신의 포인트를 확인한 후, 알뜰쇼핑을 시작합니다. 그야말로 1000원의 행복까지 느낄 수 있는 물건을 고르기 위해 날카로운 눈매로 작은 매장에서 전투를 벌입니다. 또한 너도 나도 짠순이 대회를 펼치려는 듯, 그 대회에서 기어이 승자가 되려는 듯, 낮은 가격에서도 또 깎습니다. 우리 녹색가게도 공과금 내고 난방비 모으고 해서 운영해 나가려면 돈을 좀 모아놔야죠, 호소를 해도 딴청만 피우는 그들, 그러다 기어코 자신이 원하던 가격에 물건을 얻었다 싶으면 방실거리며 얼른 돌아서 나갑니다. 그 뒷모습이 얄미워 눈을 흘기지만 싫지만은 않은 알뜰함입니다.
조각천 하나, 헌 수건 하나라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발판이나 키친타월을 만들어 이웃에게 선물하는 주부들도 있습니다. 스스로가 직접 디자인하고 바느질해서 만든 조금은 불완전해 보이는 작품 앞에서, 그래도 자기가 너무 대견하다고 감탄을 연발하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볼 때면, 미소가 흐릅니다.
사십 대 후반부터 학성동에 사셨다는 이웃에 계신 88세 노모께서는 오며가며 녹색가게를 들여다보시곤 하지요. 50대 아들과 함께 사시는 그 노모는 가끔 아들의 낡은 작업복 바지나 쟁여두었던 자신의 계절 옷들을 수선해 달라고 부탁하십니다. 저의 실력이 썩 좋지 않아 그냥 해 드리겠다, 돈은 안 받겠다 말씀을 드려도 굳이 돈을 내밀며 덧붙이는 말씀,‘1000원은 자네 수고비고 1000원은 기부금이여, 좋은 일 하는데 내가 천 원이라도 보태야지..’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때 녹색가게가 입주해 있는 이 건물에서 청소일을 하셨다는 노모께서는, 여름에 대상포진에 걸리시더니 회복이 느려 보입니다.
버리기 전에 한 번 더 쓰고, 서로 나누어 쓰고, 바꿔 쓰고, 재봉질이나 손바느질로 개성 있게 폼을 내서 쓰고, 하는 물건들. 이러한 물건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주인을 만나 반짝 눈을 뜨는 곳이 바로 녹색가게입니다. 주인을 만난 물건들이 새 생명을 얻어 저마다 살았다 기뻐하며 문밖을 나설 때마다, 큰 보람이 가게 안을 가득 채우곤 합니다.
천지가 초록으로 변하기 전 암갈색 뿌리의 신음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할 12월의 길목에서, 지난한 생명의 역사를 간직한 뿌리들을 떠올려 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에 입각해, 틔움길 건물을 무상으로 내어주신 김정삼 판사님. 그리고 IMF 이후 부터 지금까지 예수의 생명과 평화 실천의 한 장(場)로서의 녹색가게를 부단하게 이끌어 주신 이현주님과 YMCA 청년의식 앞에 깊은 존경을 드립니다. <끝>
1. 선생님 소개 부탁드려요!
책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틈틈이 시나 수필을 끄적이고, 또, 피아노 칠 기회를 만나면 건반을 더듬대며 흘러간 노래 부르기도 좋아한답니다. 하지만, 남의 글 읽기, 남의 노래 듣기를 더 많이 하는 편이죠.
2. 밝음에 독서 선생님으로 오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원주 Ymca 녹색가게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있던 중, 작년 12월 시청 홈피에서 아동복지교사 단시간제 모집건을 보고 시간대(Tow job)가 적절하여 지원을 했는데, 이후, 밝음으로 파견이 결정되었습니다.
3. 학창 시절에 가장 중요시 할 부분이 무엇인지 아이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좋은 멘토를 모시는 일
-자신의 잠재력을 일깨울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일 -정직하게 기본에 충실하려는 태도.
4. 아이들과 독서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이 어떤 점에 대해 배우길 원하시나요?
사실 처음부터 저는,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친다는 마음 보단 아이들에게 무엇을 새롭게 배울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굳이 바란다면, 아이들이 독서활동을 통해 선입견 없이 책이나 글에 대해 좀 더 친근하게 접근하는 습관을 갖게 되는 것, 정도입니다.
5. 아이들을 가르치시면서 가장 보람 있을 때와 힘드실 때는 언제 인가요?
-밝고 착한 모습으로 인사를 해 줄 때, -친근함의 싸인을 보내 올때(예:어깨동무나 야유조 목소리로 환호)
-아이들이 학업에 지쳐 귀가한 모습을 대할 때.
6. 밝음 아이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첫째: 우리 밝음 아이들의 장점은 우선 예의바르고 착하다는 점이죠.
둘째: 표현에 있어서도 자유로운 분위기라 그 모습이 개성있고 건강하게 보인다는 점도 좋구요.
셋째: 공부방 안에서 공동체 삶을 누리기에 타인에 대한 배려심도 돋보입니다.
-한 가지 부탁은: 음식도 골고루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키도 쑥쑥 크고, 감기도 전혀 안 걸렸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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