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송종규 <죽은 새를 위한 메모>

미송 2023. 4. 27. 14:41

당신이 내게 오는 방법과 내가 당신에게 가는 방법은

한 번도 일치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어떤 전언 때문이 아니라, 하나의 문장이 꽃봉오리처럼 터지거나

익은 사과처럼 툭 떨어질 때 비로소 당신이 당도한 걸 알아차린다

 

당신에게 가기 위해 나는 구름과 바람의 높이에 닿고자 했지만

당신은 언제나 내 노래보다 높은 곳에 있고

내가 도달할 수 없는 낯선 목록에 편입되어 있다

 

애초에 노래의 형식으로 당신에게 가고자 했던 건 내 생애 최대의 실수였다

이를테면, 일종의 꿈이나 허구의 형식으로 당신은 존재한다

모든 결말은 결국 어디에든 도달한다

 

, 이제 내가 가까스로 당신이라는 결말에 닿았다면

노래가 빠져나간 내 부리에 남은 것은 결국 침묵,

나는 이미 너무 많은 말을 발설했고

 

당신은 아마

먼 별에서 맨발로 뛰어내린 빛줄기였을 것이다

 

오랜 단골처럼 수시로 내 몸에는

햇빛과 바람과 오래된 노래가 넘나들고 있다.

 

 

계간 애지2016년 가을호 

 

()만으로도 알아차릴 수 있다 생각했지 공명이라도 비슷할 거라고  악기를 만지고 싶어 안달이 난 당신 연주에는 바운스가 늘 부족해 새소리로 들리는 연주는 솔직히 한 두 개 아무데도 가기 싫어 부고장이든 청첩장이든 이젠 주지마 일어설 때마다 감았던 눈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바비인형 목 쉰 스피커는 좀 꺼줄래 머리가 뽀개질 거 같아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자율 목주름과 팔뚝 언저리의 심줄들 온몸이 악기라고 부르짖는다 뒤집힌 뒤샹의 변기들 커밍아웃 직전의 울음들. <오>

 

20170909-2023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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