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의 어느 날 / 이정문
집안에서 입고 돌아다니던 잠옷 하의에 바지를 겹쳐 입었다. 그리고 목덜미가 답답하게 느껴져서 기피했던 스웨터를 입은 후에 벙거지 모자를 귀 밑까지 꾹 눌러쓰고 밖을 나섰다. 한기가 만만치 않았다. 다시 방으로 들어와 이번에는 갑옷처럼 거북스런 가죽조끼를 장롱 속 깊숙이에서 꺼내어 반코트 안에 두툼히 걸쳤다. 한파가 몰아치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강원도답게 다른 도시보다 수은주가 더 내려간다. 하얀 입김을 호호 내뿜으며 인적이 끊긴 밤거리를 걸었다. 이 추위는 시베리아서 확장한 차가운 고기압의 영향이라나.
겨울에 성큼 들어선 1919년 11월, 러시아의 우랄 동쪽 옴스크에서 볼쉐비키 혁명파와 일전을 벌이던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해군제독 코르차크는 패배하고 말았다. 백군의 지도자 코르차크는 러시아 왕조의 부활을 기약하며 근거지를 옴스크에서 바이칼호 부근의 이르쿠츠크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지도자와 참모진을 실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눈보라를 헤치며 옴스크를 떠났고, 그를 따르던 백군 50만여 명과 몰락한 왕조의 귀족들과 정교회 승려들, 그리고 민간인들 70만여 명은 8천키로의 시베리아를 도보로 횡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동토에 깔리는 죽음의 행렬이었다. 연일 강추위가 몰아쳐 수은주는 영하 20도 이하로 곤두박질 쳤고 눈꺼풀 위에는 고드름이 달렸다. 추위에 떨면서 새우잠으로 밤을 새고 나면 하얗게 얼어 죽은 시신이 아침 햇살에 반짝반짝 늘비했고, 행렬은 시신을 뒤로 하여 혁명군 추격대와 게릴라들을 따돌리기 위해 또 동쪽으로, 동쪽으로 가혹한 행군을 시작해야만 했다. 물자를 실어 나르던 말과 가축들도 죽어나갔다. 쇠갈퀴와 같은 바람이 맹렬하게 천지를 흔들었고 눈보라는 시도 때도 없이 몰아닥쳤다. 걷다가 눈밭 위에 퍽퍽 쓰러지는 동료들을 거두기는커녕 사람들은 자기 눈앞에 닥친 사신의 그림자와 싸우느냐 모두가 무표정이었다. 바이칼호가 멀리 보이는 곳에 다다르자 행렬은 120만 여명에서 20만 여명으로 줄었고, 겨우 살아남은 그들은 3미터 두께로 얼어붙은 바이칼호를 망령들처럼 횡단하기 시작했다.
80키로 정도 넓이의 바이칼호만 건너면 종착지 이르쿠츠크였다. 그러나 시베리아의 겨울은 끝까지 잔혹했다. 호수를 건너기 시작하자 얼음판 위로 영하 70도라는 상상불허의 한파가 치도곤을 때렸다. 옷을 아무리 겹겹이 겹쳐도 살은 얼어붙어왔고 입김은 쩍쩍 갈라졌으며 망막에 눈물이라도 고일라치면 하얗게 얼어붙어 눈앞이 뿌옇게 변했다. 머리가 지끈지끈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이삼일 만에 바이칼 호의 얼음판 위에는 20만 여구의 시신이 서로 부둥켜안은 채 널려졌고, 생존자가 있었는지, 과연 살아남은 자가 있다면 몇 명이나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봄이 오자 바이칼호의 얼음이 녹아내렸고 겨울 내내 얼어붙었던 시신들은 호수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버렸을 뿐이었다. 백군의 지도자이며 로마노프 왕조의 부활을 꿈꾸던 코르차크는 이렇게 백만 명 이상의 병력과 지지자들을 잃고 혁명군에게 붙잡혀 총살을 당했다.
지금 내 발길에 쩍쩍 걸리는 추위가 미안하기 그지없는 그런 역사를 가진 시베리아의 차가운 고기압인 것이다. 조잘대며 지나는 여학생의 코끝이 얼어붙어 빨갛다. 추위는 밤을 투명하게 만든다. 건물의 모서리가 날카롭게 드러나며 인도의 사각 블록이 떼깍떼깍 밟히고 쇼우 윈도우의 불빛도 각진 형태로 움츠러든다. 남부시장 건물의 모서리를 도니 남루한 옷차림의 노인네가 땅에서 주워 올린 담배꽁초를 한껏 모아진 주름살 틈의 입가로 가져간다. 잔득 목을 감싸 올려붙인 어깨로 얼음색이 쨍쨍하다. 비칠비칠한 몸놀림에 라이터 불빛이 반짝하자 하얀 연기와 함께 꽁초가 빨갛게 달아오른다. 당신은, 당신은, 내가 예상하는 것처럼 노숙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노숙자라면 다 떨어지고 때가 묻어 거뭇거뭇해도 좋으니 두터운 이불 한 채를 가졌으면 좋겠다. 살만큼 산 목숨이라도 이왕이면 따듯한 봄날에 죽었으면 좋겠다.
방송국 건물을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고 꽃집을 지나 우체국 앞으로 다가간다. 골목 어귀에 포장마차 하나 덩그러니 서 있다. 빙긋 웃으며 포장을 걷어붙였다. 포장마차는 20년 된 1톤 트럭의 화물칸 위에 자리 잡았다. 운전석에 설치된 히터는 파이프를 통해서 뒷칸으로 빼내어져 H시인의 아내가 앉아있는 밑바닥에서 따듯하게 돌고, 백열 형광등 두 개가 달랑거리는 그 아래, 맵기로 소문난 떡볶이하며 고구마나 오징어 또는 김말이 튀김하며 하나만 먹어도 든든한 소시지 꼬치하며 김이 무럭무럭 나는 부산에서 올라온 어묵하며, 이런 것들이 단돈 천 원이면 약간의 시장기를 때울 수 있는 서민들의 이런 것들이 다소곳하고, 여름 내내 우울증으로 고생하다가 근래에 새로운 시집의 출판을 준비하는 H시인의 실없는 미소가 추위에 쫓기던 내 눈시울을 스쳤다.
H시인이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에게 줄 도움이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제 병은 제 스스로가 노력해서 고치는 법이고 병원에서 주는 약이란 증상을 약간 완화시켜 주는 정도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 전부였다. 사실 내가 그의 심원한 정신적 경로를 알 수는 없는 문제였다. 가끔 투박하게 내뱉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가슴이 두근거리며 답답해진다는, 술을 마시면 죽고 싶어진다는 그의 말로 짐작하여 뭔가 새롭게 몰두할 수 있는 신선한 바람이 이 친구에게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시집을 몇 권이나 내온 사람에게 다른 방도는 없어 보였다. 그래서 언뜻 네 가슴에는 아직도 쓰지 못한 글이 있구나, 하고 던진 내 말이 이 친구에게 어떤 영감을 불러일으켰던 모양이었다. 그는 한동안 놓았던 펜을 다시 들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 분위기가 많이 나아졌다는 그의 아내의 언질이었다.
H시인과 나는 일찍 파장한 시장 거리를 두런두런 산책했다. 하나의 테마로 시집 한 권을 엮겠다는 그의 계획이었고, 어느 정도 뼈대는 완성되었는데 끝마무리에서 좀 힘들다는 말이었다. 우리의 화제는 시의 퇴고문제로 집중되었다. 서사시와 같은 전체 내용의 균형을 잡으면서 퇴고를 종횡으로 갈라 쳐, 철학성과 예술성, 그리고 역사성을 충분히 살리자는 토론이었고 서두르지 말자는 결론이었다. 여기저기 시장 골목에서 몰아치는 찬바람처럼 시는 그렇다. 내일은 더 추워진다는 일기예보처럼 시는 그렇다. 모든 시인은 가슴에 동토의 시베리아 하나를 끌어안고 사는 법, 즉느냐 사느냐의 한파에서 시가 쨍쨍 태어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발길을 포장마차로 돌렸다. 이렇게 추운 날, 아내가 포장마차에 앉아 목을 길게 빼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자꾸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는 H시인의 말이었다. 나는 눈을 흘겨 씩 웃으며 속으로 말했다.
“추운 시인 이 양반아. 그래서 내가 따듯한 방안에 앉아있기 미안해서 일부러 이렇게 먼 거리를 걸어 나왔잖아.”
(2009년 12월 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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