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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후반의 비망록

1 정겨움 죽을 고비를 두 번씩이나 넘기던 깜찍이가 살아났다. 멜롱이 오빠가 큰 힘이 되어주었다. 우울증이 남아있던 그녀 쪼그리고 오빠의 동작만 살피던 그녀, 겅중대거나 벌러덩 자빠지거나 혀를 쏙 빼미는 오빠 흉내를 내기 시작하더니 뒤질세라 오빠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2쿨한 녀석들 이틀 전부터 밥그릇을 쳐다보지도 않는 깜찍이와 멜롱이. 동물들은 배부르면 안 먹는다고 제이가 말했으나 걱정이 되었다.  유리문 툭툭 치는 소리에 내다보니 나란히 처량한 눈빛을 보내고 있다. 반가움에 장난으로 스마트폰을 디밀자 주인을 빤히 쳐다보기만 하였다.   3 한 때의 일  그는 생소한 장소나 음식을 나에게 꼭 알려 주었다. 그게 그거여도 그저 좋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 날은 일하다가 점심 때 먹어봤다고, 빅햄거집엘 데..

채란 퇴고실 2024.05.20

목련 또,

1순서 없이 밀려드는 너희를 말막음하려던 순간 있었다고 봄, 잔소리하려 하면애시당초 없었던 것처럼 너희는 부활한다 그냥 태어나서 걱정 없이 무리 속구름 꽃처럼 마술사의 지팡이로 잠 깨운 숲길 물소리처럼 살아날 때 너희 시선 볼 끝에 닿을 때 너의 손끝 치맛단에 닿을 때 2정체불명의 소리 타닥타탁 토독토독 꽃바람 속삭임 동시에 터뜨리는 소리고픈 틈 메꾸는 사이좋은 소리 3꽃등 아래 어디쯤을 달리고 있었을 때 골목 지문들 기지개를 켜고 짖꿎은 글자들 달려와 악수를 청했다 말 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말라 극진히 말렸던 비트겐슈타인을 놀리듯 웃었다

채란 문학실 2024.05.06

쇼팽을 좋아하세요

(무언가풍 목소리가 무엇인지 이젠 기억조차 없지만) 찔리지 않으면 향기조차 맡을 수 없었기에 영혼의 상처를 감내해야 했을 때 유령같은 흰 사시나무, 길을 가르쳐 주지 않았을 때 유일한 진실은 흐르는 눈물뿐이었을 때 쇼팽을 들었지 비익조가 되려 했다는 쇼팽 가장 몽환적일 때가 가장 자신에 가까워질 때였다는 쇼팽의 말을 비웃지 않았지 전주곡을 다 듣기에도 짧은 생 벽장 밖으로 쏟아지는 고독들 외치네 먼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불가침의 권리를 모든 헌법에 넣으라고 건반 위 일락이 조각나는 순간 20130901-20240406

채란 퇴고실 2024.04.06

가을 눈동자

너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동공 속 일렁이는 빛줄기를 보는 일 기시감 깃든 별 하나 바구니에 담는 일 차분한 빗줄기 음절에 젖어든다 낯설기만한 세상이 비로소 낯설지 않게 된 건 너의 무한한 은유 덕분 축귀의 문장조차 명랑해진 건 너의 노래 속 정한 빛깔 나무 덕분 눈물 속에서 태어난 붓다가 히말라야를 들락이는 시각 타인이 된 모든 나를 핥는다 초록 눈동자 측백나무에 걸려있고 오늘도 누군가는 집을 찾아 헤매인다. 20151214-20240406

채란 퇴고실 2024.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