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456

불굴의 태양

스윙재즈의 창시자 장고 라인하르트는 손가락 두 개로 기타 코드를 눌렀다고 해 더 대단한 연주자도 있었는데 주먹손으로 태어나 과일 칼로 코드를 눌렀다는 그 뽕짝도 리듬앤블루스처럼 감상하는 나는 즐기고 싶은데로 눈길을 준다 당신 종종 의문에 찬 눈빛으로 쳐다본다 달빛을 너무 골똘히 올려다 보면 사시斜視가 될 수도 있다는데 리듬을 타야겠네 구름에 가려진 달 사이 언뜻언뜻 비치는 저 소리 밤하늘 유리창을 닦는, 20160920-20230828

채란 문학실 2023.08.28

써머 와인

써머와인 봄철 딸기와 체리와 천사의 키스 나의 여름 와인은 이런 것들로 만들어지지요 살살 디미는 궁둥이 나탈리아 보디아노바만큼 뇌살적인 눈빛 옆방 남자는 거칠게 소리치네 이리와 봐 저 여자 좀 봐봐 가사가 시적이네 감미롭네 개털 여전히 중얼거리네 골 때린다 전 재산도 모자라 박차까지 벗겨가다니 어리숙해 보이는 남자와 조건을 골고루 갖춘 여자가 함께 부르는 두 개의 옥타브 계절은 봄에서 겨울로 껑충 겨울에서 여름으로 가려는데 아 아 어쩌라고 20160916-20230327

채란 문학실 2023.03.27

태백

태백 하면 김광석이 떠오른다 영화 ‘클래식’이 떠오른다 무슨 이유였는지 주인공이 백팔십도로 고개를 획 돌리던 장면은 아직도 인상적이다 군대 가는 까까머리 애인이 기차 안에 앉아 있었다 여자 주인공이 출발하는 기차를 쫓아가고 있었다 애인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꼭 살아 돌아와야 한다 외쳤다 때문인지 애인은 살아 돌아왔다 차창 너머로 던진 목걸이를 걸고서 군대 사고로 실명하게 된 애인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 주인공 그러나 결국 애인은 죽고 만다 태백 하면 나는 터널이 떠오른다 청춘을 담금질하던 그 언덕이 떠오른다. 20161224-20221215

채란 문학실 2022.12.15

10.29

앙상한 나뭇가지들 앙상한 등허리들 절벽 가장자리에 걸려 있다 휜 척추 뼈는 죽은 영혼처럼 쉬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지난 밤 축제는 화려하였다 너는 말하지만 증명할 가망이 없다 시계 뚜껑에 붙은 개미떼로는 시침을 돌려놓을 수 없었다 빙산 아래의 심장들과 튀어오르던 눈들 아직도 녹아내리고 있는 치즈들.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영속을 떠올림 20171206-20221202

채란 문학실 2022.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