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455

자유를 위한 변명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사상가인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에 눈길이 끌렸다. 그의 길동무였던 신학자 해리슨 블레이크에게 보낸 13년 동안의 편지들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숲 속 코끼리같이 홀로 길을 찾는 여행도 멋지겠지만 친구가 있어 함께 나눌 수 있는 여행은 얼마나 더 멋지고 아름다울까. 인터넷으로 얻을 수 있는 지식과 정보가 태산이라 책읽기에 도통 게을러진 요즘, 일말의 양심으로 책갈피를 펼쳤다. 최근 나의 화두인 진정한 부와 평화로움이란 무엇인가 주제에 맞아떨어지는 구절들. '집안에서도 여행자의 마음으로 머물라' 소로우의 문장이 위안을 주었다. 최고의 학벌과 갖가지 좋은 직업들을 가져 보았고 감성과 지성으로 시대의 사상가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주었던 소로우가 문명을 등지고 숲 속에서 살았다는..

채란 문학실 2022.11.04

빗소리 듣는 밤

창문을 두드리는 빗줄기가 말라붙은 눈시울을 적신다. 빗물들이 곤두박질치며 땅 속 깊숙이 꽂힌다. 어차피 좀 울어야 할 판국이었는데 잘 됐다. 눈물이 친구를 만난 셈. 과년한 처녀가 오밤중에 엉엉 울면 한이 맺혀 운다 할 것이고, 드라이한 여자가 울음을 그칠 수 없어 한다면 어인 청승이냐 비웃을지 모르니 소리 없이 내리는 비 보다야 천둥 변죽 울리는 비가 참말로 좋다. 제 이름 자랑치 않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들 모두가 은총이다. 햇볕에 든 보드라운 공기, 어둠 속 별빛 그리고 비. 비. 비. 겨울비 내린 어제가 사라지고 오늘은 봄비가 내린다. 천둥소리에 실려 온 계절의 서곡이 공포를 떨쳐준다. 울고 싶은 이를 다시 울린다. 소리와 소리로 이어지는 밤의 정적, 고요만큼 따사로운 위안도 없겠다. 서로를 끌어..

채란 문학실 2022.10.30

허공의 산책

Image by_ ssun 모든 것이 오직 픽션일 뿐임을 아는자들, 그래서 다른 누군가가 쓰기 전에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자들은 행복하다. 비밀스럽게 글을 쓰기 위해 궁전대신의 신분에 정박한 마키아벨리처럼. -페루난두 페소아 허공의 산책 / 오정자 바람 묻은 창이 가을이다 바람 냄새 발칙한 바람과 오래전부터 나는 바람과 화해하고 싶었다 신파를 몰고 온 바람과 내가 원래 하나였을 거라고 바람을 일으키려다 툭 떨어지는 잎들 바람에 대한 경고를 던질 때마다 신소리 라며 바람이 웃는다 바람이 우는지 달싹댄다 바람이 천박하거나 비참한 것에 대하여 바람이 고뇌이거나 쓸쓸한 것에 대하여 바람이 선지자처럼 말할 때 바람의 목소리가 가을이다 바람을 따라 도주하려던 머리를 돌려 바람을 쓰고 있는 바람과 나 바람을 ..

채란 문학실 2022.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