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 유하
빛은, 스러져가면서
자기의 가장 아름다운 핵심을 깨닫는다
우리가 이렇듯 욕망으로 붉게 물드는 건
그 깨달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구름의 몸이여
어둠 앞에 선 幻의 에너지여
가자, 헛됨의 끝까지
행복(왜 행복이란 말은 시인 작가들에게 사어가 아니라 '금기어'인 것인가. 오래 전부터 '나, 지금 행복해' 라고 말하는 시인, 작가를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이나 충만은 문학(인)이 지향할 수는 있어도 향유할 수는 없는 '경지'인 것만 같다. 세상과 독자는 시인, 작가들에게 '절대 행복하지 말라. 당신들이 행복한 순간 당신들은 우리에게 처형당한다' 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하여 불행과 불만, 불편, 불면, 불임, 불효, 불충....과 같은 부정의 덕목들은 고스란히 문학(인)에게 양도되었는가보다. <중략>
그는 시쓰기가 외롭다고 했다. 산책자는 또 동의한다. .....<중략> "올 것이 온 것 같다. 그 동안 기형적으로 시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것 아닌가" 라고 유하 시인은 말했다. 시의 영토는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지만, 그 좁고 가파른 벼랑이 시의 국경이라는 것을, 외로움과 불안이 그 국경에서의 전투식량이라는 것을, 한없이 죽음에 가까운 시쓰기여야만 국경에서의 삶은 지속된다는 역설을, 한 편의 시쓰기가 한 번의 치열한 죽음이어야 한다는 운명을 말이다. <중략>
"막막한 앞길을 버리고 문득 강물에 투항하고 싶었지만" 그는 "세상은 사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임을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끝끝내는 "오래 견디어낸 상처의 불빛"을 뿜어내면서 "마음의 열쇠가 되는 나라"를 시 속에서, 삶 속에서 건국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 깊은 진창을 견뎌내고 있는 그는. <이문재 시인>
- "내가 만난 시와 시인" (문학동네, 2003)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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