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도종환<희망의 바깥은 없다>

미송 2012. 2. 10. 18:51

     

     

    희망의 바깥은 없다 / 도종환

     

    희망의 바깥은 없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낡은 것들 속에서

    싹튼다 얼고 시들어서 흙빛이 된 겨울 이파리

    속에서 씀바귀 새 잎은 자란다

    희망도 그렇게 쓰디쓴 향으로

    제 속에서 자라는 것이다 지금

    인간의 얼굴을 한 희망은 온다

    가장 많이 고뇌하고 가장 많이 싸운

    곪은 상처 그 밑에서 새 살이 돋는 것처럼

    희망은 스스로 균열하는 절망의

    그 안에서 고통스럽게 자라난다

    안에서 절망을 끌어안고 뒹굴어라

    희망의 바깥은 없다

     

    나는 도종환 시인에게서 줄곧 어떤 식물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의 시편 어디엔가 단 한 번 등장하는 '버즘나무'가 그의 인상과 겹친다. 버즘나무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 나무 이름이 풍겨내는 이미지와 어감이 도종환 시인과 어울리는 듯하다. 버즘, 버즘이라는 발음. [중략] 저 버즘나무의 시와 삶에는 시와 삶의 거리를 무화시키는, 날이 시퍼렇게 선 작가정신이 있다. 그것을 말투로 옮기자면 이런 것이다; 양심은 지극한 섬세함이고, 사랑은 가차없는 민첩함이다. 감수성이 무딘 자, 고집은 강하되 섬세함이 없다. 옹고집에다 감수성마저 없는 자, 인간의 적이다. 민첩함이 부족한 사랑은 백일몽이거나 몽유일 뿐이다. 몸에서 몸으로 번져나가지 않는 사랑은 욕망이거나 애욕, 집착이거나 광신일 따름이다. 몸의 민첩함이 없고 사랑만 뜨거운 자, 생명의 적이다. <이문재 시인>

     

     

    이 비 그치면 또 어디로 가시려나 대답 없이 바라보는 서쪽 하늘로 모란이 툭 소리 없이 지는데
    산길 이백리 첩첩 구름에 가려 있고 어느 골짝 올라오는 목탁 소리인고 음- 추녀 밑엔 빗물 소리만

    도종환 <산사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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