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보선 <변신의 시간> 外 4편 1 변신의 시간 아무 거리낌 없이 인생은 시작됐다 어린 나뭇가지들이 계절과 계절 사이에서 죽어갈 때 나는 양미간을 찌푸려 그 가냘픈 육신들을 이마 위에 옮겨 심었다 시간의 무덤에 꽃과 향과 초를 바치는 번제(燔祭)의 밤마다 나는 백 일치의 기억을 불태우곤 했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운문과 산문 2014.03.17
진중권 <글쓰기의 영도(零度)> 글쓰기의 영도(零度)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 중에 입을 통해서 모든 것을 쏟아내다가 허공으로 사라지는 사내의 그림이 있다. 배 멀미를 하는 사람들이 토하고 토하다가 더 토해낼 게 없어 괴로워하는 것처럼, 글쟁이도 요동하는 현실 앞에서 느끼는 현기증과 역겨움에 글을 토하고 토.. 운문과 산문 2014.03.17
박남희 <그 꽃병> 그 꽃병 / 박남희 그 병에 꽃이 있어야 된다는 것은 관념이다 꽃병과 꽃은 별개이다 다만 그들이 우연히 만날 뿐이다 그 꽃병을 나는 여자라고 바꾸어 말해본다 꽃병이 갑자기 누드로 보인다 사실 꽃병은 늘 누드를 꿈꾸지만 실제로는 누드가 아니다 누드의 조건은 육체에 이목구비가 있.. 운문과 산문 2014.03.16
한용국 '금요일의 pub', 김남호 '죽은 고양이 사용설명서' 금요일의 pub / 한용국 사랑을 이야기하던 시간들은 지나갔다 남은 자들이여 남은 것은 웃음뿐이다 우리에게는 날씨의 연금술이 필요할 뿐 서로에게 얼마나 무용한지 확인하기 위해 발끝을 까딱거리며 의자를 들썩이는 거다 나름대로 깔끔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나사 같은 감정들을 처리.. 운문과 산문 2014.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