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鄕-ESQUISSE 외 ESQUISSE 1 눈을 감으며 SUNA는 내 손을 찾는다 손을 사뿐 포개어 본다 따스한 것이 ―――― 그저 그런 거예요 ―――― 뭐가 ―――― 세상이 SUNA의 이마가 하아얗다 넓다 2 SUNA의 눈망울엔 내 잃어버린 호수가 있다 백조가 한 마리 내 그 날의 산맥을 넘는다 3 가느다랗게 스물다섯 살이 한.. 운문과 산문 2012.08.22
유승도<푸른 세상>외 1편 푸른 세상 / 유승도 어제보다 푸른 오늘이다 수백 아니 수천 마리의 벌레를 잡아 죽이고 늦은 아침을 먹는다 포도잎 뒷면에 다닥다닥 붙은 노랗고 검고 하얀 벌레들 털이 송송 난 벌레들을 장갑 낀 손으로 꾹꾹 누르거나 슥슥 문질러서 으깨 죽일 때, 벌레들은 갉아먹었던 포도잎을 몸 밖.. 운문과 산문 2012.08.18
안현미<시에게> 시에게 / 안현미 불을 켠다. 오랫동안 캄캄했던 컴퓨터 모니터, 먼지가 뽀얗게 앉은 스탠드 그리고 생의 마지막으로 불멸의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마음과 더 이상 무언가를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오래된 불안을 향해서도 불을 켠다. 이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빛이리라. 그런 후에는 다시 .. 운문과 산문 2012.08.17
장석주<모란이 필 때 보았던 당신> 모란이 필 때 보았던 당신 / 장석주 여름 초입인데, 햇볕은 벌써 빙초산같이 뜨겁습니다. 정수리를 꿰뚫듯 작열하는 땡볕 아래에서 존재 자체가 곧 녹아내릴 듯합니다. 서운산 산딸나무는 흰꽃을 피우고, 산벚나무 열매는 까맣게 익어갑니다. 오전 내내 감나무 아래를 돌아다니던 유혈목.. 운문과 산문 2012.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