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과 칼럼 222

金壽伊<생의 바닥에서 날아오르는 새>

시인은 종이 위에 시를 쓰지 않는다. 풀잎과 강물, 벽과 거리,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내면의 미궁 등 삶의 수많은 지면 위에 쓴다. 이 구 체적이면서 추상적인 삶의 지면에 시인은 자신의 기억과 운명과 깨달음을 정성스레 쓴다. 마치 경전에 글자 하나를 새길 때마다 부처님께 절을 올렸다는 옛 목공의 마음과 다를 것이 없다. 정호승은 새벽에 내린 흰 눈 위에 시를 쓴다. 그의 시의 배경에는 계절과 관계없이 자주 눈이 내린다. 혹은 그의 시의 계절은 대체로 겨울이다. 정호승이 시린 눈 위에 쓴 시들 에서는 시대의 고통을 끌어안았고, 에서는 상처받은 인간의 손을 잡아주었다. 정호승의 시심(詩心)이란 착하고 맑은 인간의 마음 자체이며, 타인과 나의 고통은 서로 이어져 있음을 증명해왔다. 실제로 정호승의 시에서 눈..

평론과 칼럼 2023.01.26

청춘의 죽음, 철학자의 탄식

한 명의 꽃다운 청춘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가 전파를 탔다.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종현 말이다. 무대의 화려함, 팬들의 사랑으로도 다 채워지지 않는 삶의 빈자리가 깊었나 보다. TV 속에서는 늘 자신감 넘치고 행복해 보이기만 한 아이돌 스타도 결국 혼자되면 외롭고 힘들면 슬퍼하는 하나의 작은 짐승일 뿐이라는 자명한 진리를 새삼 일깨운다. 무서운 것은 이런 자살 뉴스가 이젠 그리 놀랍지 않다는 것이다. OECD 1위의 자살률을 자랑하는 나라이니 감각이 무디어질 만도 하다. 그래도 마음은 아프다.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어야 했던, 끊을 수밖에 없었던 그 모든 사람들을 생각하면 말이다. 지금도 백척간두에 서있는 심정으로 자살을 고민하고 있을 수많은 이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저며온다. 인..

평론과 칼럼 2022.08.18

[김진경의 교육으로 세상읽기]네안데르탈인 증후군

우리는 나무가 도끼에 심하게 찍혀 있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아이고 저 나무 무지 아프겠다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떠올린다. 우리들에겐 참 너무 평범하고 진부한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생각들이 현생인류의 조상인 크로마뇽인에게서 일어난 두뇌혁명의 산물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두뇌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크로마뇽인 이전의 인류인 네안데르탈인 두뇌는 서로 연결이 안된 채 놓여 있는 수많은 컴퓨터들처럼 두뇌의 방들이 서로 연결이 안된 채 병렬되어 있는 구조였다고 한다. 그런데 크로마뇽인으로 오면서 이 두뇌의 방들이 뉴런이라는 신경세포에 의해 자유롭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두뇌구조의 변화가 네안데르탈인에게는 불가능했던 새로운 사고를 가능하게 했다. 나를 다루는 두뇌의 방과 나무를 다..

평론과 칼럼 2021.03.18

우아함, 그리고 옷에 대하여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우아함, 그리고 옷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대가를 내 생에 지불해야 이처럼 모든 남루한 디테일을 제거해 버린 고급하고 단순한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 정미경의 소설 호텔 유로, 1203>의 주인공 여자는 지금 “물빛을 연상시키는 푸른 스트라이프 셔츠의 가슴께를 손등으로 가만히 쓸어보”고 있다. 그녀는 진열장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옷들을 구경한다. 그녀가 갖고 싶은 것은 과도한 장식을 배제한, 우아한 옷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토니 타키타니>에는 731벌의 고급 부티크 옷을 남긴 채 죽은 여자가 등장한다. 가격표도 뜯지 않은, 아름다운 옷들을 남긴 채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희한한 이름을 가진 토니 타키타니는 키 165, 발 사이즈 230, 옷 ..

평론과 칼럼 2018.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