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회수> 회수 (回首) / 박목월 나의 손가락 사이로 모든 것은 부드럽게 흘러 내렸다. 어린 날의 모래톱이며 냇물이며, 앓는 밤의 출렁이는 검은 물결이며, 첫사랑이며, 쫓다가 놓쳐버린 사슴 그럿은 나의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 흔적으로 달이 있다. 달빛에 비춰보는 빈 손, 그리고 산마.. 운문과 산문 2009.05.19
이용악<낡은 집> 낡은 집/ 이용악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 손손에 물려줄 은동곳도 산호관자도 갖지 못했니라. 재를 넘어 무곳을 다니던 당나귀 항구로 가는 콩시리에 늙은 둥글소 모두 없어진지 오랜 외양깐엔 아직 초.. 운문과 산문 2009.05.17
서정주<화사> 화사(花蛇) / 서정주 사향박하(麝香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울마다 크다란 슬픔으로 태여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둥아리냐 꽃다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든 달변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낼룽거리는 붉은 아기리로 푸른 하늘이다. ..... 물어 뜯어라. 원통히 물어 뜯어.. 운문과 산문 2009.05.16
김현승<밤은 영양이 풍부하다> 밤은 영양이 풍부하다 / 김현승 무르익은 과실의 밀도와 같이 밤의 내부는 달도록 고요하다. 잠든 내 어린 것들의 숨소리는 작은 벌레와 같이 이 고요 속에 파묻히고, 별들은 나와 자연의 구조에 질서 있게 못을 박는다. 한 시대 안에는 밤과 같이 해체나 분석에는 차라리 무디고 어두운 시인들이 산다... 운문과 산문 2009.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