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보선 <갈색 가방이 있던 역> 갈색 가방이 있던 역* 작업에 몰두하던 소년은 스크린도어 위의 시를 읽을 시간도 달려오는 열차를 피할 시간도 없었네. 갈색 가방 속의 컵라면과 나무젓가락과 스텐수저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아니, 고작 그게 전부야?” 읽다 만 소설책, 쓰다 만 편지, 접다 만 종이.. 운문과 산문 2017.10.26
안상학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 안상학 그때 나는 그 사람을 기다렸어야 했네 노루가 고개를 넘어갈 때 잠시 돌아보듯 꼭 그만큼이라도 거기 서서 기다렸어야 했네 그 때가 밤이었다면 새벽을 기다렸어야 했네 그 시절이 겨울이었다면 봄을 기다렸어야 했네 연어를 기다리는 곰.. 운문과 산문 2017.08.30
기형도 <정거장에서의 충고> 정거장에서의 충고 / 기형도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 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 운문과 산문 2017.08.08
최명희 [언어는 정신의 지문] 언어는 정신의 지문 최명희 말에는 정령이 붙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말이 '씨'가 된다고 한다. 나는 모국어의 모음과 자음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울림과 높낮이, 장단을 사랑하여 이 말의 씨를 이야기 속에 뿌리는 사람일 것이다. 지금 우리는 백 년이 아니라 천 년 단위가 바뀌려는 세기 .. 운문과 산문 2017.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