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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씨의 다변증

그런 객쩍은 생각을 구보(仇甫)가 하고 있을 때, 문득, 또 한명의 계집이 생각난 듯이 물었다. “그럼 이 세상에서 정신병자 아닌 사람은 선생님 한 분이겠군요?” 구보는 웃고, “왜 나두...나는, 내 병은, 다변증(多辯症)이라는 거라우.” “무어요 다변증....” “응 다변증, 쓸데없이 잔소리 많은 것두 다아 정신병이라우.” “그게 다변증이에요오.” 다른 두 계집도 입안말로“다변증” 하고 중얼거려보았다. -박태원의 에서

낙서와 독백 2023.11.10

이방 <부구령(扶溝令)>

280 · 4(3660) 부구령(扶溝令) 부구현령 아무 제(薺)는 그 성은 기억나지 않는데, 대력(大曆) 2년(767)에 죽었다. 그로부터 반년 뒤에 그 부인은 꿈에서 제와 만났다. 제의 부인이 저에게 저승에서 죄를 받았는지 복을 받았는지 묻자, 제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살아생전 진사(進士)로 있으면서 경박함에 빠져 문장을 훼손시키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을 헐뜯었기 때문에 지금은 저승의 부림을 받고 있소. 저승에서 매일 뱀 두 마리와 지네 세 마리를 내게 보내어 몸에 난 일곱 구멍을 출입하게 했는데, 차마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소. 저승의 법에 따르면 360일 동안 마땅히 이 벌을 받아야 하는데, 벌이 끝난 뒤에야 비로서 환생할 수 있게 되어 있소. 근자에 다른 일로 염라대왕께 매를 맞았는데,..

내가 읽은 시 2023.10.17

반대로 도는 시계바늘

모두가 떠났다고요? 혼자 남았다고요? 아닙니다. 떠난 게 아니라 아직 오지 않았고 기다릴 뿐입니다. 돌아봐 죽도록 사랑한 기억이 없다면, 와야 할 누군가 안 온 것이고 춥게 느껴진 빈 터는 그가 차지할 자리입니다. 인생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르지 않고, 거꾸로 미래에서 현재, 그리고 과거로 흘러 언젠가 봉우리에 서면 계곡은 그저 지나온 자국일 뿐입니다. 이제 나 먼저 스스로를 털어버려야겠습니다. 과거의 먼지 하나라도 내 탓으로 돌렸지만 앞으로는 절대로 내 탓이 아닌, 누구의 탓도 아닌, 오직 날씨 탓으로 돌려 아무 죄 없습니다. 양심의 가책은 과거에서 오는 게 아니라 미래에서 오기에 결백합니다. 이런 생각이 자기합리화일까요? 아닙니다. 과거에 희생당하여 오늘이 불행하다면 그럴 수도 있지만, 과..

정문의 작품 2023.09.25

나짐 히크메트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시인과 작가들 2023.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