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살았을 때의 어떤 말보다 아름다웠던 한마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말이 잎을 노랗게 물들였다 지나가는 소나기가 잎을 스쳤을 뿐인데 때로는 여름에도 낙엽이 진다 온통 물든 것들은 어디로 가나 사라짐으로 하여 남겨진 말들은 아름다울 수 있었다 말.. 운문과 산문 2009.03.28
송욱영<피> 200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피 송 욱 영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부터 연다. 공기를 순환시키기 위해서다. 잇몸이 더 곪아 가고 있는지 잠을 자고 일어나면 입에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 손바닥을 입에 대고 후 분 다음 숨을 들이마시면 두엄 속에 한 달 정도 묻어둔 썩은 계란 냄새가 풍겨온다. .. 운문과 산문 2009.03.27
김용옥<조선의 명기, 매창> 조선의 명기, 매창 그 절개를 추억하다 / 도올 김용옥 나 도올은 구식 인간이다.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아날로그요, 구식이다. 신문에 올리는 이 글도 원고지 위에 잉크 펜으로 쓰는 것이다. 공중목욕탕에도 잘 가는데 그것도 현란한 사우나에는 가지 않는다. 같은 물을 필터링만 하고 빙빙.. 운문과 산문 2009.03.27
임혜주<팥죽을 끓이며> 팥죽을 끓이며 / 임혜주 그새 또 잊었다 오랫동안 또글또글해졌을 팥 웬만해서는 풀어지지 않는다는 것 시간이란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어서 옹골지게 굳은 팥에게도 껴안았던 햇빛 다 풀어 놓을 시간이 필요한 법 한 시간에 해치울 욕심 놓아두고 약한 불로 되돌린다 그제서야 조.. 운문과 산문 2009.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