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보선<지금 여기> 외 1편 지금 여기 나는 우연히 삶을 방문했다 죽으면 나는 개의 형제로 돌아갈 것이다 영혼도 양심도 없이 짖기를 멈추고 딱딱하게 굳은 네발짐승의 곁으로 그러나 나는 지금 여기 인간 형제들과 함께 있다 기분 좋은 일은 수천수만 개의 따뜻한 맨발들로 이루어진 삶이라는 두꺼운 책을 읽을 .. 운문과 산문 2012.02.07
자크 프레베르<작문>외 1편 작문 둘에 둘은 넷 넷에 넷은 여덟 여덟에 여덟은 열여섯 다시 해봐! 하고 선생님은 말한다 둘에 둘은 넷 넷에 넷은 여덟 여덟에 여덟은 열여섯 그러나 아니 저기 하늘에 지나가는 종달새 한 마리 아이는 새를 보고 아이는 새소리를 듣고 아이는 새를 부른다 나를 구해 다오 나하고 놀자 .. 운문과 산문 2012.02.04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나무와 하늘> 외 14편 1 나무와 하늘 빗속에서 소요하던 한 그루의 나무, 우리를 지나쳐 쏟아지는 잿빛 속으로 질주한다. 과수원의 찌르레기처럼 나무는 빗속에서 생명을 갈무리해야 한다. 빗줄기 잦아들자 나무도 걸음을 멈춘다. 맑은 밤 깊은 적막 속의 천지에 눈꽃 피어나는 순간을 고대하는 우리처.. 운문과 산문 2012.02.04
유하<노을> 노을 / 유하 빛은, 스러져가면서 자기의 가장 아름다운 핵심을 깨닫는다 우리가 이렇듯 욕망으로 붉게 물드는 건 그 깨달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구름의 몸이여 어둠 앞에 선 幻의 에너지여 가자, 헛됨의 끝까지 행복(왜 행복이란 말은 시인 작가들에게 사어가 아니라 '금기어'인 .. 운문과 산문 2012.02.03